`인사(人事)가 만사(萬事)`공정한 인사가 조직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은 불변(不變)의 경영 원칙이다. 해마다 인사철만 되면 모든 직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만큼이나 경영자의 고심도 깊을 수 밖에 없다.
은행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과거 `철밥통`으로 불렸던 은행권의 경우 특히나 외환위기 이후 가열되고 있는 영업경쟁 탓에 과거와는 달리 연공서열에 따른 인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 대신 실적이 좋은 `유능한 인재`와 영업환경에 새바람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참신한 인물`을 발탁하는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 지고 있다.
올들어 벌써 단행된 일부은행의 임원 및 부서장급 인사를 들여다 보면 `실적주의`와 `세대교체`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적 나쁜 임원은 언제든 `퇴출`= 올해 은행권 임원인사에서는 실적에 따라 임기나 계약기간에 관계 없이 중도에 하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은행임원은 `임시직원`의 준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등장한 지 오래지만 이젠 더 이상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 2000년부터 46개월간 장수해 오다가 지난달 말 퇴임한 김성철 부행장을 제외한 나머지 12명 임원의 평균 재임기간은 13개월에 불과했다. 특히 최근 단행된 부행장급 인사에서는 임명된 지 불과 5개월만에 물러난 임원도 있다. 조흥은행 역시 지난해 8월 신한금융지주사의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새로 임명된 부행장 중 2명이 불과 4개월 만에 중도 퇴진하기도 했다. 이들이 모두 실적부진만을 이유로 중도에 물러난 것은 아니지만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필요할 경우 언제나 누구든 새로운 인물로 교체하겠다는 인사원칙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이 같은 실적주의 인사는 앞으로 전개될 다른 은행들의 임원인사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세대교체` 바람 거세= 실적이 좋은 승진 후보들 가운데 될수록 젊고 참신한 인물을 임원으로 발탁하는 경향도 갈수록 뚜렷해 지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올해 단행된 임원인사에서 40년대(55세 이상)에 태어난 임원 승진자는 단 한명도 없다. 일례로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달 단행된 임원인사에서 구성된 9명의 부행장 중 4명의 나이가 40대다. 부서장급의 경우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대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젊은 직원들의 발탁이 두드러져 `30대 부서장`을 어느 은행에서든 손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다. 이 같은 세대교체 바람과 함께 여성 직원들의 약진도 두드러지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올 인사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신대옥 둔촌동 지점장을 야전사령관 격인 강남지역본부장으로 발탁했다. 제일은행도 지난달 임원 인사에서 김선주 운영지원단 부장을 상무로 승진시키며 은행 내 최초의 여성임원을 배출했다.
◇`상시 구조조정 체제` 정착= 은행권에서는 이 같은 대규모 물갈이 인사와 함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능력과 실적, 나이에 따라 직원들을 사실상 무보직으로 대거 후선에 배치하는 것은 물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거나 명예퇴직을 실시하는 등 상시 구조조정 체제가 정착돼 가고 있다. 지난해 신용보증기금이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데 이어 산업과 수출입 등 국책은행들도 일정나이 이상의 직원을 무보직 또는 계약직으로 전환해 임금을 삭감하는 등의 제도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또 국민은행은 이달 초 명예퇴직을 통해 450여명 가량의 직원을 퇴직시켰으며 이에 앞서 우리와 외환은행 등도 지난해 명예퇴직을 통해 직원들을 대거 정리했다. 이밖에 상당수 다른 시중은행들도 직급간 불균형 해소 및 조직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조와 합의만 된다면 언제든 명예퇴직을 실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그동안 누적된 인사적체를 해소하고 조직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상시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운용을 탄력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며 “이제 더 이상 은행에서 `정년(停年)`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한기석기자 hank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