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압축성장의 대명사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하는 역사도 썼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시스템 구축 없이 성장에만 방점이 찍힌 압축발전의 부작용은 컸다. 국가가 모든 것을 주도한 발전인 탓에 각 분야의 시스템 구축은 너무 미약하다. 정치는 경제발전 수준이나 국격에 맞지 않을 정도로 후진적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섰지만 중산층의 붕괴와 양극화 심화라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가재정도 위협을 받고 있고 지방정부나 공기업 등의 부채는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 전반의 시스템은 더 후진적이다. 목숨을 빼앗아간 각종 사고의 원인을 캐보면 으레 인재(人災)가 발단이다. 사람에 의해 움직이다 보니 대응도 우왕좌왕이다. 한국의 경쟁력이 경제력에 비해 훨씬 저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경제력은 80점인데 국가 시스템은 60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현 군산대 석좌교수)은 "한국 경제는 이제 50대의 장년기"라며 "상처 난 시스템을 고쳐야 '건강한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국가 시스템을 송두리째 개조해야 한다는 얘기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이야말로 바꿀 수 있는 적기다.
서울경제신문이 현대경제연구원과 6일부터 일주일 동안 전국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시스템 개조'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우리 국민들은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를 생각보다도 더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명 중 2명이 우리나라 전반의 투명성을 부정했고 이 결과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정치 등 상부구조뿐 아니라 경제나 사회 등 하부구조의 국가 시스템 전반의 개조 필요성도 높았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기면 국가가 주도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난다"며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엔진이 같아도 후륜 구동차와 4륜 구동차의 작동원리와 힘은 다르다. 각 영역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강한 국회부터 달라져야 한다. 또 행정부의 만장일치 의사결정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면서 정치ㆍ행정부 시스템 개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은 "시민사회의 성숙 없이는 국가도약이 힘들다. 동시에 정부는 심판자 역할만 해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상부구조(정치-행정부)뿐만 아니라 하부구조 그리고 시민사회의 시스템 중심으로의 변화가 수반돼야 중진국의 함정을 뛰어넘고 선진국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경제신문은 '국가 시스템을 개조하자'라는 주제 아래 사회 전반의 문제점을 각계 전문가들의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앞으로 60회 이상에 걸쳐 내보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