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제는 경제를…

김인영 경제부장 inkim@sed.co.kr

고려 17대 인종이 즉위할 때 나이가 15세였다. 국내 정세는 어지러웠고 민심이 극히 동요해 음양지리설이 횡행했다. 국제적으로는 만주 지역에서 새로 일어난 금(金)나라가 고려를 엿보고 국내에서는 외척 이자겸이 딸을 바쳐 세력을 확대하면서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승려 묘청은 이런 틈을 이용해 지세가 떨어진 개경(개성)에서 서경(평양)으로 천도하자고 주장했다. 묘청은 국수주의를 이용했고 아울러 기득권층의 부패와 오만으로 찌들린 민심을 적절히 활용했다. 묘청은 문신 정지상등을 앞세워 인종에게 서경에 왕기가 있으니 천도하면 일신의 부귀뿐만 아니라 자손대대로 복을 누리게 된다고 주장, 왕의 측근과 조정의 일부 대신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묘청 일파가 지나치게 농간을 부렸고 여러 음모가 드러나면서 유신들의 반대가 대두됐고, 기득권층의 반발이 거세졌다. 결국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좌절됐고 묘청은 난을 일으키지만 진압된다. 1,000년이 지난 지금, 수도 이전은 내란이 아닌 법적 절차에 의해 좌절됐다. 헌법재판소의 21일 결정은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위헌이라는 법률적 결론과 함께 한국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중대한 판결이었다. 헌재는 이날 결정문을 통해 “지난 1392년 조선왕조가 창건돼 한양이 도읍으로 정해진 이래 600여년간 전통적으로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사실은 자명한 것이므로 모든 국민이 인식하고 있는 관습법”이라고 밝혔다. 헌재의 21일 결정에 대해 여러 각도의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현재 한국이 처해 있는 보혁 갈등의 선상에서 최고 헌법기관이 건전한 보수 진영에 손을 들어줬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신행정수도 건설은 수도권 과밀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에서 나왔다기보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정치적 결정에서 튀어나왔고 연초 총선을 앞두고 야당인 한나라당마저 충청권표를 의식해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통과를 묵인했었다. 이런 허점을 최고 법관들이 좌절시킨 것이다. 헌재의 결정으로 한국 정치는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하다.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8대1의 압도적인 비율로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뜻밖의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며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긴급 고위당정협의를 소집하는 등 수습대책 마련에 착수했고 한나라당은 “위대한 결정이며 사필귀정”이라며 환영했다. 이번 결정으로 정권의 명운을 걸고 행정수도 이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기득권 세력에 강한 타격을 입히려던 집권 여당에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수도 이전을 반대했던 야당과 보수세력은 큰 힘을 얻어 노무현 정부와 집권 여당을 흔들어 남은 3년간 레임덕 현상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고려는 이자겸ㆍ묘청의 난을 거쳐 무신 정권이 들어섰고 그후 몽고에 굴복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이씨 조선에게 왕조를 내주는 등 고려사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헌재의 결정을 계기로 정치권이 극한 대결 양상을 보인다면 우리 역사는 파란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권이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고 서로 양보해서 타협 국면으로 간다면 위기의 한국호는 살아날 기회를 갖는다. 이제는 경제에 몰두해야 할 때다. 많은 해외투자가들과 경제계 인사들은 정치권이 수도권 이전이니 국가보안법 개정이니 하는 문제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경제가 기력을 잃고 있다고 주장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헌재 결정으로 체면을 구기고 명분상으로는 큰 타격을 입었지만 차제에 행정수도 이전을 강행해야 하는 부담을 덜고 경제에 매진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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