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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호 법무법인 해울 대표변호사, 국내 첫 존엄사 소송 맡아 인식변화 끌어내
● 이경환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 공익소송서 활동 활발
의료(醫療)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의료행위는 오히려 사람을 해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의사는 신이 아니기에 더러 실수할 수밖에 없다지만 최선을 다한 의료와 부주의한 처치는 분명하게 구분돼야 한다.
의료전문 변호사들은 의료인들이 올바르고 적절한 처치를 해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외부감시자 역할을 한다. 의료인들 못지 않은 전문지식으로 무장해 때로는 환자 편에 서서 부적절한 의료행위에 경고를 보내고 때로는 최선의 진료를 행한 의료인들을 보호하기도 한다.
21살의 한 청년은 지난 2000년 늦은 밤 귀갓길에 강도를 만나 흉기에 복부를 찔렸다. 인근 A종합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외과 전문의가 부재중인데다 중환자실 자리도 없었다. 응급실 당직 인턴은 전문의와 상의 끝에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고 B병원 중환자실에 자리가 있어 전원(轉院)이 가능할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이 병원 역시 당장 긴급수술에 들어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A병원 인턴은 "환자의 출혈이 심하지 않아 수술이 급하지 않다"고 말했고 B병원 전문의는 다음날 수술할 요량으로 환자를 받았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한 환자는 생각보다 더 위험한 상태였다. 경험이 부족한 인턴이 오판을 한 것이다. B병원은 뒤늦게 준비에 착수해 수술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다. 21살 꽃다운 청년은 이튿날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유족들은 조금만 더 빨리 수술을 받았더라면 아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으리라 생각해 소송을 냈다. 4년여가 지난 후에야 이들은 작은 승리를 거뒀다. 대법원은 2005년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턴에 응급실 당직을 서게 한 A병원에 책임을 물어 9,400만원 상당의 배상을 하라고 확정판결했다. 유족 편에 서서 사건을 승리로 이끈 김성수(50·사법연수원 27기)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는 "병원이 응급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길 경우 환자 상태에 대한 정보를 충실하게 보낼 의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 판결"이라며 "경험이 부족한 인턴 혼자 응급실 당직을 서게 하는 병원이 차츰 줄어든 계기가 되기도 해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었던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의사 출신 변호사라는 타이틀로 유명하다. 서울대 의대에 재학 중이던 1985년 운동권에 몸을 담으며 학업을 중단했지만 변호사 자격을 딴 이후인 1998년 의대 3학년으로 복학한 후 2000년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장기간 노동운동에 관심을 쏟았던 김 변호사는 노동 분야 전문변호사로도 명성이 높다.
의사 출신답게 전문성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김 변호사는 지난해 9월부터 의료분쟁을 처리하는 변호사 150여명으로 구성된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변)'의 대표도 맡고 있다. 의료소송에 대한 최신 판례 분석뿐 아니라 의료관련 법률이나 건강보험제도 등에 대한 연구 교류를 하며 잦아지는 의료분쟁을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모색 중이다.
신현호(55·연수원 16기) 법무법인 해울 대표변호사는 국내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의료전문변호사 가운데 한 명이다. 의료 공부를 따로 한 적 없는 그가 의료전문변호사로 활동하게 된 것은 90년 변호사 등록을 한 그가 처음 맡은 사건이 계기가 됐다. 법대를 나왔다는 한 남성이 심장수술을 받다 뇌사상태에 빠진 여동생의 피해구제를 받고 싶다며 찾아온 사건이었다.
신 변호사는 "수술 동의를 환자 본인이 아니라 오빠 등 가족에게만 받은 것은 설명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없기에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며 "관행과는 달라 의사들이 반발이 거센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올바른 방향의 변화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신 변호사는 다양한 의료분쟁 사건을 수임하며 우리 의료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수술 이전에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수술 후 이상이 생겼다면 그 수술에 과실이 없다는 것을 의사가 입증해야 한다는 판례도 여러 번 받아냈고, 과실과 피해 상의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참을 수 없는 과실이 있다면 위자료를 물어줄 필요가 있다는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특히 신 변호사는 국내 첫 존엄사 소송으로 불리는 일명 '김 할머니 사건'을 담당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신 변호사는 "살아있는 사람의 호흡기를 떼게 하는 사건은 전 세계에서도 10건이 채 안돼 세계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국내에서도 가치 있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환(54·연수원 17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보건학 석·박사를 취득한 후 연세대학교 의과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다시 변호사로 돌아온 이색 이력의 소유자다.
이 변호사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공익 소송 쪽에 관심이 높다.
교수로 인정받던 이 변호사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이유도 '사회를 바꾸는 소송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어떤 소송의 경우 승패와 상관없이 제기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평소 생각이다.
대표적인 예로 2010년 신종플루 백신 접종을 맞고 사망한 유족들을 대리해 제약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언급했다.
제약사가 신종플루 백신을 급하게 대량 생산하기 위해 정제되지 않은 유정란을 사용했고 이로 인해 세균에 감염된 백신을 맞은 환자들이 사망했다는 것이 이 변호사의 주장이었다. 이 변호사는 "결과적으로 이 소송은 '환자 사망과 백신 간에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패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 소송을 계기로 백신 제조 문제가 국회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고 결국 제조 공정 자체를 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비록 소송에서는 졌지만 수많은 생명을 혹시 모를 위협에서 구한 일이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현재 원고 측을 대리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소송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변호사는 "살균제 소송이 제기되며 수백 명의 피해자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가 된 것은 물론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등 국민의 건강권에 좋은 영향을 주는 법이 제정되는 계기도 됐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의료소송은 변호사들이 크게 반기는 사건은 아니라고 한다. 까다롭고 전문적인데다 판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반해 높은 수임료나 성공보수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버티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명감'과 '보람'이다.
신 변호사는 "같은 일을 하는 다른 변호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누군가 억울한 사람들을 대변해줬다는 보람, 또 다른 의료사고의 위험을 내가 막았다는 사명감이 크다"며 "의료인들과 대척점에 서서 송사를 벌이기도 했지만 수년 뒤 그들 모두가 한번 쯤은 '그때 많이 배웠다'는 말을 건네 온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 역시 "산업재해 같은 사건의 경우 수임료보다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그러나 이런 작은 소송 하나가 의료계에 경각심을 주고 사회를 바꿔가는 힘이 된다는 사명감이 내게 힘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