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프로 레슬러 역도산은일본의 전통 씨름인 스모(相僕) 선수 출신이었다. 그는 `조센진(朝鮮人)'이라는 이유로 일본 스모계의 최고 권위인 요코즈나(橫綱)에 오를 수 없게 되자 프로 레슬링으로 진로를 바꾼 인물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일본의 고교 스모계를 제패한 조선인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김택룡이었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3일 고정칼럼 `메아리'를 통해 1937년 개최된 일본의 전국고등학교 씨름선수권대회 개인전 우승자가 당시 이리농림학교(현 익산대학)에 재학 중이던 김택룡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공개했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의 전통 씨름에 관심이 있는 한 일본인 전직 기자를 통해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칼럼의 필자는 이 기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그로부터 입수한 1919년 이후일본 고교씨름 대회 우승교 및 우승자 일람표를 훑어본 결과 김택룡의 개인전 우승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특히 일람표에 따르면 이리농림학교는 1936년 18회 대회와 1938년 20회 대회에서 각각 단체전 3위를 차지했으며, 1941년 규슈(九州) 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한 것으로 나와 있다고 필자는 전했다.
다만 일제 당시 명문으로 꼽혔던 이리농림학교에는 일본 학생도 다수 재학했을것으로 추정돼 이들 대회에서 단체전에 참가한 이 학교 선수들이 모두 조선인이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필자는 "일제 당시 조선총독부가 조선씨름협회에 스모를 넣어 개칭하지 않으면씨름을 없애겠다고 압력을 넣자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청년 학생들이 일본 씨름대회에 나가 조선 씨름을 자랑하는 민족의 슬기와 기개를 펼쳤다"고 주장했다.
필자가 언급한 이 일본인 전직 기자는 김택룡의 이후 행적을 추적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충청남도에서 살았던 사실까지는 확인됐지만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남이든 북이든 그가 생존해 있다면 올해로 85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