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회사채 대거만기 부담작용

■기업 자금비축'모을 수 있을 때 모아놓자'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5일 내놓은 금융(채권)시장 동향은 하반기 경제를 바라보는 국내기업의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리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금융시장은 그런대로 안정세를 찾고 금리도 하향 안정국면에 있지만, 언제 금리가 들썩거리고 회사채 수급이 불안정 국면으로 빠져들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깃들어 있는 셈이다. ◇회사채 순발행액 한달새 두배 급증 지난 6월 한달간 회사채 총 발행규모는 3조9,805억원. 이중 상환(차환)분을 제외한 순발행액은 2조7,874억원이었다. 5월(1조3,863억원)에 비하면 두배나 급증한 것이다. 이 같은 추세는 7월초에도 계속되고 있다. 1일부터 7일까지의 회사채 순발행액이 8,200억원이었다. 한은 관계자는 "7월 순발행회사채는 4대그룹이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재무구조가 우량한 4대그룹도 자금비축에 나선 셈이다. ◇앞당겨 발행하는 3가지 이유 회사채를 가능한 앞당겨 발행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우선 한은 설명대로 국고채 등 무위험 채권의 수익률이 떨어져 금융회사들이 대체수요처로 회사채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국고채와 회사채의 금리차가 줄어들면서 우량기업 회사채 뿐 아니라 신용등급 BBB 정도의 회사채에까지 수요의 손길이 뻗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른바 '재무 리스트럭처링'이다. 싼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해 기업어음(CP)이나 은행 대출금을 갚으려는 의도다. 하지만 정작 큰 이유는 역시 하반기 대규모 회사채 만기도래에 따른 부담감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현재는 그런대로 자금시장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하반기 금리 급등에 따른 우려감과 대규모 물량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앞당겨 회사채를 발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말 자금시장과 경기 불안감 금감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회사채 신속인수제가 끝나는 연말 또는 내년 상반기 한계기업들의 도산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 하반기 회사채 만기도래 규모는 총 32조원으로 이중 정부의 고수익채권 등 자금시장 안정책으로도 소화가 불투명한 투기채 규모는 4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거시경제에 대한 불안감도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기업들이 감산ㆍ감원에 나서는 등 전반적으로 보수적 경영패턴으로 돌아서고 있다"며 "미국 등 대외경제까지 낙관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일단은 자금을 최대한 모아놓자는 심리가 우세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연말ㆍ연시가 고비 금감원 설명대로 현 기업자금 시장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지속됐던 회사채(BBB-)와 국채간의 금리차가 좁혀지고 회사채 하루 평균 거래량도 올들어 5조6,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문제는 연말ㆍ연시다. 금감원 경고대로 회사채 신속인수 만기가 끝난뒤 상황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금감원이 벌써부터 연말 자금대책에 나선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금상황이 의외로 일찍 나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애널리스트는 "대우자동차와 현대투신 매각이 장기화하고 서울은행 처리도 순조롭지 못할 경우 금융시장이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며 "거시경제가 수직 상승 국면으로 돌아서지 않는 한 기업들도 당분간은 보수적 경영에 치중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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