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식의 둥근 돔과 24개의 민흘림 기둥이 특징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여행 가이드와 함께 왔다면 건물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듣고 건물을 바라볼 것이다. 만약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통치자가 민주주의를 가장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란 말을 들었다면 아름답다는 생각 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우아하고 독창적인 글쓰기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스위스 출신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중립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건축학적, 그리고 미학적 가치와 관계없이 그 상징성에 기초해 평가되고 있다는 것. 저자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란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평가를 모두 견뎌낼 수 있는 내적 자산을 갖춘 건축물이라고 정의한다. “단지 실용성을 염두에 둔 샐러드 사발에서 희미하게나마 완전성, 여성성, 무한성 등 의미 있는 연상을 떠올린다면 기둥, 아파트 건물에서도 우리 삶에 중요한 추상적인 표현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무표정의 차가운 건물에서 감정과 이야기를 읽어내는 일은 곧 건물이 아름답게 보이느냐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아름답게 구축해내는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일상의 철학을 가볍게 짚어내는 게 책의 특징.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건축물의 의인화되고 비유적인 의미보다 역사적 배경과 상징성을 생각하는 게 더 편하다. ‘행복의 건축’이 다소 진지하게 건축물을 성찰하게 한다면,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은 40개의 건축물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흥미롭게 되짚어 보도록 도와준다. 건축평론가인 저자는 초등학생인 딸에게 역사, 정치, 사회, 예술을 가르치기에 가장 손쉽고 효율적인 방법이 직접 건축물을 돌아보며 설명하는 것이었다고 창작 배경을 밝혔다. 책에서 딸은 끊임없이 묻고 저자는 끊임없이 대답한다. “아빠 쿠데타가 뭐에요?” “프로테스탄트는요?” 저자가 절두산순교성지, 국회의사당 등 40개의 건축물을 설명하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사회 교과서 내용이 책에 포함됐다. ‘H형강’ 등 건축용어들도 딸의 수준에 맞게 풀어쓰는 등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라는 것이 책의 장점. 책에는 김수근, 김중업, 이희태 등 한국 건축 1세대들의 작품부터 렘 콜하스, 마리오 보타 등 외국 작가들이 설계한 국내 건축물까지 두루 담겨있다. 건축가들과 직접 인터뷰를 통해 전해들은 뒷이야기, 설계에 담긴 일화 등도 눈길을 사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