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자재난에 시달리고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주요 원자재를 기업들이 공동으로 구매하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관계부처에 건의했다. 하지만 해당 공무원은 이에 대한 검토는커녕 수용하기 곤란하다고 일축했다. 또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인허가 신청을 냈더니 지방자치단체가 기부체납을 하지 않았다며 신청서를 반려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2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감사원의 기업불편신고센터에 접수된 대표적인 민원 사례들이다. 이곳에는 9월 초까지 모두 840건의 민원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중 대부분이 중앙부처나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공장설립에 따른 인허가 신청을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다거나 불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업인들의 하소연이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틈만 나면 약속하지만 일선 행정기관의 높은 벽에 부딪혀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다.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일선기관을 대상으로 전면적인 특감에 들어간 것은 이 같은 소극적인 기업민원 처리 행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강도 높은 정책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청와대까지 나서 기업투자를 독려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부처에서는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인 듯하다. 감사원은 노무현 대통령 주재 아래 진행됐던 투자전략보고회에서 나왔던 기업인들의 47개 건의사항(재정경제부에서 68개 과제로 관리)이 형식적으로 처리되고 있다며 중점 감사대상으로 설정해놓았다.
이들 건의사항은 대체로 기업들의 창업 및 공장설립에 관한 규제를 개선하고 토지이용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공장을 세우고 싶어도 환경영향평가 등 행정절차에만 몇 달이 걸리고 지자체들간의 이해관계 충돌로 과감한 투자를 오히려 방해하는 사례가 적지않은 게 현실이다.
노 대통령이 러시아와 인도ㆍ베트남 등 해외방문을 통해 국내기업들의 활약상을 몸소 체험하고 이를 기업현장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베트남 현지에서 “기업들의 활동에 여러 애로와 장애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을 풀어나가기 위해 정부가 기업들과 상당히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면서 “조금 더딘 것은 다시 한번 챙겨 매듭짓고 새 과제는 한번 더 확인해 방향을 설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번 특감이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불필요한 기업 관련 규제를 과감히 해소하고 일선 행정기관의 무사안일과 도덕적 해이 현상까지 바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그동안 기업 애로사항을 해소해준다고 했지만 실제로 나아진 것은 거의 없다”면서 “감사원이 이번에 곪은 곳에 메스를 대겠다고 나선 만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