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에 수십년 써오던 과명을 바꾸는 간판교체 작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병원의 문턱을 낮추고 거부감을 없앤다는 것이 명분이지만 환자 수 감소에 따른 경영악화 및 전공의 지원 기피현상 등을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산부인과∙가정의학과∙비뇨기과 등이 과명 개정작업에 착수했거나 논의 중이다. 과명 개정에 가장 적극적인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최근 대의원총회를 열어 과명을 여성의학과로 바꾸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학회 측은 조만간 대한의학회와 국회의 승인 등 개명작업에 필요한 후속조치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개명의 주된 이유는 미혼여성 환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대한산부인과학회의 한 관계자는 "산부인과라는 명칭에 대해 일반 국민들이 임신과 출산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아 부인과 영역의 진료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며 "미혼여성이 산부인과를 찾을 때의 부담감을 없애고 심리적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노력으로 명칭 변경의 필요성이 제기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과명 개정에는 전공의들의 산부인과 기피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8월 전공의 후기 모집결과 66명을 뽑는 산부인과에서는 단 2명만이 지원했다.
지난해 실시된 2012년도 전공의 모집 때 89명 모집에 32명(36%) 지원이라는 저조한 결과를 보인 비뇨기과도 위기 타개책의 하나로 개명을 서두르고 있다.
대한비뇨기과학회 관계자는 "'성병환자만 찾는 과'라는 왜곡된 인식을 개선하고 산부인과∙외과∙내과 등 다른 과로의 환자 유출을 막는 동시에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과라는 것을 의미할 수 있는 과명으로의 변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가정의학과도 통합의학과∙가정건강의학과∙가족주치의학과 등 보다 폭넓게 환자를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의 과명 변경을 염두에 두고 여론을 수렴 중이다.
한편 최근 수년간 진단방사선과가 영상의학과로, 소아과가 소아청소년과로, 마취과는 마취통증의학과로, 정신과는 정신건강의학과로, 산업의학과는 직업환경의학과 등으로 개명되기도 했다. 한 정신과 의사는 "정신건강의학과로 명칭이 바뀐 후에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거부감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산부인과의 경우 65년간 써오던 이름인데 이를 바꾸려 하는 것은 그만큼 위기감이 크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영역 침범을 우려하는 타과들의 반발 및 대한의학회와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의 까다로운 절차가 있는 만큼 개명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