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뜨겁게 사랑하고 우러러 존경하는 벽산 김인득 장로님.천년 만년 저희들의 울타리가 되어 비바람을 막아주시리라고 여겼던 장로님께서 홀연히 하늘 나라로 가셨다는 사실 앞에 놀라고 아쉬워 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만 그 가운데도 저는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과 충격을 안고 지금 장로님의 영전에 서 있습니다.
이 자리에 서니 승동교회에서, 벽산그룹에서, 한국기독실업인회에서, 극동방송에서, 그밖의 여러 분야에서 장로님의 지도를 받으며 교제를 나누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가며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김인득 장로님.
장로님은 20세기 초반 국권을 빼앗긴 나라에서 태어나 이 민족의 통치와 광복후의 혼란과 전란, 격동을 겪으며 사셨습니다. 물려받은 것은 가난밖에 없는 좋지않은 환경이기에 자칫하면 평범한 삶, 아니 평범 이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성공적인 생애를 이룩하셨습니다.
장로님은 조국근대화의 신념에 누구보다도 투철하셨으며 또 누구보다도 많은 공헌을 하셨습니다. 장로님께서 흘리신 땀이 연료가 되어 오늘날 우리나라는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남들은 평생 훈장을 한 번 받기도 어려운데 철탑산업훈장, 은탑산업훈장, 금탑산업훈장을 계속해서 받으신 것은 장로님께서 이 나라 산업발전에 그만큼 크게 기여하신 공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 입니다.
신앙과 민족애로 일관된 삶을 사신 김인득 장로님.
장로님이 이끌어 오신 로타리클럽, 새마을운동, 벽산장학문화재단, 용마장학문화재단,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이 시간에 모두 열거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장로님은 「한국의 세기적인 거인」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장로님의 업적과 장로님이 남기신 자취를 요약하려고 합니다.
이 땅에서 너무나도 분주하게 보내셨던 장로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누구보다도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충성을 다했던 장로님. 이제 주님의 날개 밑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십시오.
장로님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았던 강민구, 삼가 추도의 말씀을 올립니다.
강민구 유성그룹회장 한국기독실업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