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년대나 70년대에 학창 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게 최고의 졸업 선물은 만년필이었다. 그 중에서도 미제 파커 만년필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까워서 쓰지도 못하고 애지중지 가지고만 다녔다. 파커 만년필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엘리트가 된 듯이 폼을 잡고 다녔다.
지금은 편리한 필기구가 많아 만년필을 쓰는 사람은 일부러 찾아야 눈에 띌 정도다. 그러나 글을 써본 사람은 만년필만이 가지고 있는 부드럽고 중후한 멋에 빠져 쉽게 바꾸지 못한다.
아침에 출근해 만년필에 잉크를 넣으며 하루를 생각한다. 만년필에 잉크를 채울 때는 90%만 채워야 한다. 오래 쓸 요량으로 잉크를 가득 채우면 잉크가 넘쳐 손에 묻거나 종이를 버리기 십상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또 가득 채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잉크를 채울 때마다 “조금은 비워둬야지” 하는 여백의 지혜를 떠올린다. 가득 채우지 않고 조금은 비워두는 여유 있는 하루를 만년필과 함께 시작한다.
새로운 잉크로 충만해진 만년필을 들고 있으면 뭔가 써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메모지에 하루 일과를 계획하며 가장 먼저 쓰는 글이 있다. 바로 ‘통계입국(統計立國)’이다. 통계입국은 통계인의 자존심이다.
누구든 하루를 시작하거나 한해를 시작할 때 목표를 설정한다. 목표에 도달하는 길은 여러 가지다. 가장 힘이 적게 들면서도 빠르게 목표에 이르는 길을 찾으려면 길잡이의 안내를 받거나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하면 된다.
예전에는 주로 길잡이에게 안내 받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지만 이 방법은 길잡이에게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길잡이를 길러내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지식이 개인의 경험에 의해 축적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도와 나침반을 보고 길을 찾는다. 이 방법은 배우기가 쉬워 요령을 조금만 터득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즉 특정한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다.
국가 운영과 같이 중요한 일을 주먹구구로 해서는 안된다. 또 전문가 몇 사람에게 의존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이럴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시스템을 만들고 거기에 따라 일을 하는 방법이다.
그런 시스템의 하나가 곧 통계라고 생각한다. 통계는 우리가 목표에 가장 효율적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