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버핏 대 KIC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지난해 12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월가 금융기관으로 부터 투자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밝혔다. 버핏은 지난해 8월 여기저기 곪았던 서브프라임 부실덩어리가 한꺼번에 터지자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월가 금융기관의 바겐세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 발언에 비춰보면 투자은행에 관심 없다는 인터뷰 내용은 다소 의외였다. 투자의 귀재라는 버핏이 월가 금융회사 투자 요청을 뿌리친 이유는 간단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로 월가의 내로라는 투자은행들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으나 아직까지는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월가 금융기관이 제대로 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부실의 바닥 확인은 아직도 멀었고 따라서 월가 투자은행들의 주가는 더 떨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버핏이 투자 요청을 뿌리친 진짜 이유는 며칠 뒤에 드러났다. 그는 위험자산에 보증섰다 엄청난 손실을 입고 비틀대는 채권보증사업에 뛰어들었다. 버핏이 신규 투자에 착수한 뒤 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미국 2위의 채권보증회사(모노라인)인 암박의 신용등급을 2단계 강등해버렸다. 채권보증사에 최고 신용등급 상실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월가에서는 버핏이 신용위기의 새로운 뇌관인 모노라인 부실의 최대 수혜자라고 한다. 기존 모노라인을 미덥지 못하게 여기는 금융기관과 지방정부의 채권보증 수요가 버핏에 몰릴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월가 금융기관의 투자를 마다하고 채권보증사업에 뛰어든 버핏의 혜안이 놀랍기만 하다. 버핏의 투자 행보가 이어질 무렵 한국투자공사(KIC)는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월가 애널리스트의 보고서 한 장에 한국 금융시장이 통째로 흔들렸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생각하면 KIC의 투자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물론 월가의 부실청산이 끝나지 않아 한 박자 빠른 성급한 투자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월가의 바겐세일이 어디 흔한 일 인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잡기 어렵다는 지적 또한 적지 않다. 투자 성과는 두고 볼 일이지만 KIC의 판단을 버핏과 동일선상에 올려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월가 금융기관의 투자 요청을 거절한 버핏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비단 기자뿐만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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