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폰 반납·중견사부도/호황 옛말,구조조정 도마「거품이 빠진다.」
최근 몇 년간 불황을 모르는 듯 매년 초고성장을 거듭하던 정보통신산업도 올들어 성장세가 한풀 꺾이는 고비를 맞았다.
한국경제를 강타한 주가폭락, 환율상승과 IMF(국제통화기금)난국 탓이다. 한동안 국내 정보통신산업은 「골드러시」를 방불케 할 만큼 신규 참여업체들이 끝이 안보이는 줄을 이었다.
삐삐, 휴대폰, 통신서비스, PC통신, 인터넷, 컴퓨터유통 등 뭐 하나 잘 된다는 소문만 돌면 대기업·중소기업 가리지않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정보통신」은 마치 성공의 관문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총량적으로 정보통신산업은 실제 수요를 훨씬 웃돌며 공급자가 넘쳐나는 거품현상이 내재하고 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올들어 경기침체가 가속화되고 급기야 경제국난이 초래됨에 따라 정보통신산업의 실상을 감추던 버블도 잇따라 터졌다.
이젠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형국을 맞고 있다. 적지 않은 PC유통업체가 넘어졌다. 시티폰사업자들은 사업권 반납을 소리치고 있다.
올해 그나마 잘나갔다는 이동전화·PCS(개인휴대통신) 등 이동통신부문도 올해말을 고비로 내년부터는 IMF의 한파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올 정도다.
한편으론 이같은 구조조정이 장기적으로 정보통신산업의 건전도를 한 차원 끌어올릴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고통스런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겠지만 덕지덕지 낀 체지방이 빠지면서 튼튼한 근육질로 몸을 새로 만들 것이라는 희망이다. 무엇보다 올해 정보통신산업은 21세기 한국경제 회생의 주역이라는 무게를 더욱 크게 느낀 한해로 기록된다. 부문별로 올해 정보통신산업을 되짚어본다.<이재권 기자>
◎통신서비스/시내·국제전화부문 완전 경쟁체제 돌입/휴대폰 초호황 구가
올해 국내 통신서비스시장은 경쟁구도가 완결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1백년 이상 독점시장이던 시내전화부문에 하나로통신이 등장, 한국통신과 경쟁을 벌이게 됐기 때문이다. 또 제3국제전화 사업자인 온세통신(008)이 서비스에 나서 한국통신(001) 및 데이콤(002)과 경쟁에 들어갔다.
시외전화부문에서 11월부터 별도의 사업자 식별번호를 누르지 않고도 전화를 걸수 있도록 하는 사전선택제가 실시된 것도 올 통신시장의 뚜렷한 이정표다.
유선통신분야는 시내전화 가입자 2천만명 돌파(6월), TDX(전전자교환기) 1천만회선 돌파(10월)라는 기념비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무선분야의 폭발적 신장세에 눌려 다소 빛이 바랬다.
무선분야에서의 경쟁은 치열 그 자체였다. 한국통신프리텔(016), 한솔PCS(018), LG텔레콤(019) 등 PCS(개인휴대통신) 3사가 지난 10월부터 본격적인 상용서비스에 들어갔다. 이들은 기존 SK텔레콤(011), 신세기통신(017) 등의 이동전화업체와 같은 시장에서 치열한 5파전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 5사의 등장으로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급팽창, 지난해 말 3백18만명이던 가입자가 29일 현재 총 6백57만6천여명으로 배 이상 늘어났다. 국민 4명중 1명 꼴로 휴대전화를 갖게 된 것이다.
11월에는 한국TRS, 아남텔레콤 등이 디지털 TRS(주파수 공용통신)서비스를 시작했고 에어미디어, 한세텔레콤과 인텍크텔레콤도 무선데이터통신서비스를 개시했다.
한편, 이동전화와 PCS이 경쟁하는 틈바구니에서 「주머니속의 공중전화」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던 시티폰이 출범 9개월만에 지역사업자들이 사업권 포기를 선언함으로써 마구잡이식 경쟁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던져줬다.
또, 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만 여겨졌던 통신사업에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국내 통신서비스 시장은 이제 막 경쟁이 도입되자마자 구조조정이라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백재현 기자>
◎컴퓨터/홈시장 매출격감 행망도 수익적어 컴산업 최악한해
「부도사태, 홈시장 규모 사상 처음 감소, 중견업체 소멸, 채산성 악화…」
PC업계의 올 한해를 돌아보면 마치 태풍이 지나간 현장을 보는 듯하다.
연초 용산전자상가를 중심으로 발생한 부도사태가 홈시장의 극심한 판매부진으로 이어지더니 종국에는 중견업체가 잇따라 무너지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한마디로 「컴퓨터산업 최악의 해」였다.
그중 「수익의 젖줄」인 홈시장이 당초 20∼30%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지난해 보다 10% 정도 줄어든 90만대를 기록한 것은 불황의 심각성을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대형업체들은 홈시장에 의지하는 비중이 크며 중견·조립업체들은 전적으로 여기에 의존해 왔다.
그 결과 자본력이 약한 중견·조립업체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래도 전체 PC시장 규모는 행정망 시장의 급증에 힘입어 지난해(1백86만대) 보다 7% 가량 늘어난 2백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원가에도 못미치는 행정망 시장의 증가는 대형업체의 매출만 늘렸을 뿐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업계에서는 IMF 한파로 내년에도 극심한 불황에 휩싸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아직 시장규모도 제대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조립업체들은 시장 위축과 환율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의 가중으로 존폐위기에 놓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패키지 소프트웨어업계도 히트 상품 부재와 불법복제의 만연, 유통망 붕괴 등으로 극도의 판매부진 상황을 면치 못했다.<김기성 기자>
◎시스템 통합/공공발주량 적어 불황그늘속 허덕 저가입찰 잡음도
올 시스템통합(SI) 업계에는 「고속성장」과 「불황」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얼굴이 동시에 존재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매출액 측면에서만 보면 업체마다 전년대비 20∼50%의 고성장을 이어갔다. 아직 정확한 집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삼성SDS가 8천7백억원으로 96년보다 19% 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LG-EDS시스템이 33%, 현대정보기술 48%, 쌍룡정보 52%, 대우정보 55% 등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사상 최악의 불황』이라며 울상을 짓는 아이러니가 보인다. SI는 사업특성상 매출과 영업(수주)의 실현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영업을 한 뒤 6개월이나 1년이 지나서야 매출이 실현되는 것.
따라서 올 매출 실현부분은 대부분 지난해에 영업한 성과다. 올해 고속성장을 했다는 것은 지난해 영업성적이 좋았다는 뜻이다. 또 사상 최악의 불황이었다는 것은 업체마다 올해 수주실적이 별로 좋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연초부터 이어진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정부 공공기관의 SI사업 발주량이 적었고 기업도 정보기술(IT)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현상이 역력했다. 실제로 올해 발주된 1백억원이상의 공공프로젝트는 영종도신공항·의료보험전산망·토지공사 등 겨우 손꼽을 정도였다. 또 당초 발주될 예정이었던 내무부 국가안전관리시스템 등 다수의 프로젝트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이에 따라 업체간 수주경쟁이 어느해보다 치열했다. 1년내내 계속된 저가·부정입찰 의혹 시비로 업계가 몸살을 앓았다. 노동부 산하 산재의료원 전산시스템 구축사업의 경우 업체간 시비로 사업이 무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올해보다 내년이고 내년보다는 내후년이다. 당장 확보해 놓은 일거리가 별로 없는데다 내년에는 IMF 한파로 정부와 재계가 초긴축재정에 들어갈 게 뻔하다. SI업계는 우울한 세밑을 맞고 있다.<이균성 기자>
◎온라인 서비스/시장규모 2배 증가/천리안매출 800억 인터넷도 성장세
올해 PC통신·인터넷 등 온라인서비스 시장은 덩치가 두 배정도 늘어나는 급팽창 추세를 보였다.
천리안을 비롯해 하이텔·나우누리·유니텔 등 4대 PC통신의 이용자가 지난해보다 두 배가량 늘어나 3백만명을 넘어섰다. 게다가 무료가입자와 다른 사람의 ID를 쓰고 있는 사람까지 합하면 이용자는 6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가구당 1가구가 PC통신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천리안은 업계 처음으로 1백만명의 유료가입자를 돌파하는 개가를 올렸다. 매출액도 8백억원에 달하고 순이익은 지난해보다 4배 가량 많은 2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이텔(90만명·5백80억원), 나우누리(60만명·3백80억원), 유니텔(60만명·5백50억원) 등도 큰 폭의 신장세를 보였다.
업체간 경쟁도 치열했다. 기존 4대 업체간 경쟁에다 SK텔레콤이 인터넷 기반의 「넷츠고」를 선보이고 광고 등 대대적인 물량공세로 기존업체들을 압박했다. LG도 내년 2월께 이 시장에 참여할 예정이다.
인터넷 시장도 전년보다 40% 가량 늘어난 1백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성장세를 유지했다. 이는 전자상거래(EC) 등 인터넷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며 내년에도 이같은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말에 불어닥친 환율상승은 인터넷 업계에 치명타가 됐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매출의 30∼40%를 국제 인터넷회선의 임차비용으로 지불하고 있어 가입자 확대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됐다.
또 잔뜩 기대했던 인터넷 광고사업도 생각보단 부진했다. 경기침체로 기대만큼의 수익이 발생하지 못했고 상황은 내년에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이균성 기자>
◎통신기기/PCS서비스 개시 단말기 내수시장 2조5,000억 육박
「불황속 호황.」
불황의 그늘이 산업전반에 드리워진 가운데서도 올해 통신기기산업은 신규사업자의 증가와 PCS 등 이동통신의 붐으로 내수시장이 전래없이 급팽창했다.
실제로 이동통신기기산업은 지난해보다 2배정도 성장, 셀룰러와 PCS를 합친 단말기의 총 공급량이 5백만대를 넘어섰다. 단말기시장규모만 2조5천억원에 달했다. 장비시장을 합칠 경우 5조2천억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이같은 급성장은 음성과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PCS라는 새로운 개념의 통신서비스가 상용화되면서 이에 필요한 대량의 장비와 단말기수요가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또 여기에 기존 이동전화사업자들도 아날로그장비를 디지털장비로 대체하며 꾸준하게 수요를 견인한 것도 주효했다.
올해 내수시장의 호황은 국산 통신기기가 세계시장에 적극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미스프린트에 50만대의 PCS단말기를 수출하는 계가를 올린 것을 비롯, 홍콩허치슨사에 24만대(7천만달러), 페루 텔레포니카에 5만대를 수출했고 LG정보통신도 미 아메리텍사와 GTE사에 각각 15만대와 10만대 등 단말기를 대량 공급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에 따라 올해가 국내CDMA(부호분할다중접속)산업의 수출원년으로 기록됐다. 또 PCS 단말기시장에선 현대전자가 삼성전자와 LG정보통신에 이어 뛰어들어 3파전을 형성했다.
단말기개발에선 삼성전자와 LG정보통신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경량화가 급진전됐다. 1백5g, 1백9g짜리가 출시되고 있고 1백g 미만의 제품들도 이미 시제품제작에 들어가 와이셔츠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되는 「포켓폰시대」를 열고 있다.
그러나 달러당 2천원을 넘나드는 외완위기로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해야 하는 제조업체들의 원가부담이 가중되면서 수익성은 오히려 지난해에 비해 다소 하락, 향후 수익성확보문제가 정보통신업계의 새로운 숙제로 부각됐다.<조용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