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엔지니어링 합병 무산] 그룹 사업재편 삐끗… 지배구조 영향은 미미

오너일가 지분 보유 안해 지배구조 파장 없지만
순항하던 사업재편 제동
양사 파견형태 직원교류 등 시너지 위한 협업은 계속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19일 최종 무산된 가운데 한 직원이 서울 서초구 삼성중공업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무산되면서 삼성그룹이 지난해부터 진행하던 사업구조 재편 작업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 회사 간 합병을 통해 재무구조를 탄탄히 하고 육상·해양플랜트 사업에서 시너지를 꾀하려던 계획이 어긋나게 됐기 때문이다. 다만 두 회사가 그룹 지배구조상 말단에 위치하고 있고 오너 일가의 보유 지분도 없어 합병 무산이 지배구조 재편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합병 무산에도 시너지 극대화를 위한 협업을 이어가면서 주주 의견과 시장 상황을 감안해 합병 재추진을 신중하게 검토한다는 입장이지만 추진하더라도 시일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구조 재편 작업 첫 제동=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무산은 삼성이 추진해온 사업구조 재편 작업 가운데 첫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삼성은 지난해 말부터 중복사업을 정리하고 시너지가 예상되는 사업 부문은 합치는 방식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해왔다. 계열사 간 지분매각을 통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순환출자 고리를 단순화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했다. 패션 부문을 떼어낸 제일모직은 삼성SDI에 흡수됐고 삼성종합화학은 삼성석유화학을 합병했다. 지난해 말 삼성SNS와 합병한 삼성SDS는 지난 14일 거래소에 상장했고 사업구조를 조정하고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꾼 삼성에버랜드는 다음달 17일 상장을 앞두고 있다. 제조계열사가 보유 중이던 금융계열사 지분은 대부분 삼성생명으로 몰아줘 금융 부문 수직계열화도 완성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난해 말 30개에 달하던 순환출자 고리는 11월 현재 14개로 줄었다.

이처럼 속도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삼성의 사업구조 및 지배구조 재편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돼왔지만 이번 중공업·엔지니어링 합병 무산으로 첫 제동이 걸린 셈이다. 특히 중공업·건설 부문은 사실상 삼성 사업구조 재편의 마지막 작업으로 인식됐던 만큼 이번 합병 무산의 파장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양사의 합병 이후에는 건설·플랜트 부문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물산이나 제일모직 건축·플랜트 사업과의 추가 사업재편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던 만큼 합병 무산으로 전체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사업이 부진한 계열사끼리 합치려 했던 계획이 어긋나면서 사업구조 재편과 단순화 작업 속도가 다소 더뎌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합병이 무산됐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양사의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아 전체 지배구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삼성전자(17.6%)와 삼성SDI(0.4%), 삼성전기(2.4%), 삼성테크윈(0.1%) 등 전자 부문 계열사들이 지분을 갖고 있고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요 주주는 삼성SDI(13.1%)와 삼성물산(7.8%)이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도 거의 없을 정도로 두 회사 모두 지배구조의 하단에 위치하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양사의 합병은 사업 시너지 효과를 보고 진행한 것"이라며 "이번 합병 무산으로 사업구조 재편에는 다소 영향을 받겠지만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시너지 극대화 위한 협업 지속한다=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무산된 19일 양사의 분위기는 하루 종일 뒤숭숭했다. 주식매수청구 시한을 앞두고 주가를 띄우기 위해 삼성중공업이 직접 자사주매입에 나서 2,800억원에 이르는 돈을 쏟아 부었는데도 합병을 성사시키지 못해 대규모 문책성 인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과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지난 9월30일 공동 기업설명회에서 "양사는 기술의 뿌리가 같아 합병 효과가 크다"며 "오는 2020년까지 매출 40조원의 회사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으나 결국 주주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양사는 다만 합병 무산에도 불구하고 시너지 극대화를 위한 협업은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약 100여명의 삼성엔지니어링 직원이 나이지리아 플랜트 현장과 거제조선소 등지에 파견돼 삼성중공업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협업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기본 구상에는 변화가 없다"며 "파견 형태로 직원들을 교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병 이후 양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됐던 공동 태스크포스(TF)는 당분간 유지돼 합병 무산에 따른 후폭풍을 정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TF는 양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공동 팀장으로 운영하면서 합병 이후 조직개편과 사업방향 등을 구상해왔다.

향후 합병 재추진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삼성그룹 전체로 큰 그림을 그리면 결국 합병을 다시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과 조선·플랜트업의 시황이 워낙 좋지 않아 합병하더라도 다른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는 상반된 분석이 나온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합병 재추진은 향후 시장 상황을 봐서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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