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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았던 부패 추방을 위한 김영란법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원회로 넘겨지면서 본회의 통과 여부에 촉각이 곤두세워지고 있다. 김영란법은 첫 여성 대법관이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강지원 변호사의 부인인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권익위원장으로 재직했던 지난 2011년 부패 추방을 위해 제출한 법안으로 4년째 국회에 방치됐었다. 가족을 포함해 1회 100만원 이상, 연 300만원을 초과해 받을 경우 직무와 관련 없이 형사처벌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공직자를 대상으로 마련된 법안이 국회에서 사립학교 교원, 민영 언론사까지 대상에 포함시키며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법이 적용되는 4촌 이내의 친족까지 포함할 경우 약 2,000만명,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대상이 된다는 지적이다. 여론의 반대를 유발해 고사시키려는 속셈이라는 주장에서부터 부패 추방을 위해 확대안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우리는 국내총생산(GDP) 13위(PPP기준)에도 불구하고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2014년 부패인식지수 순위는 43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27위의 초라한 성적표를 갖고 있다. 법안 통과가 절실한 가운데 과잉 입법에 대한 주장을 들어봤다.
●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정무위원회 간사
비리 많은 사학·공공적 언론 포함 당연
접대문화 개선·투명성 제고 기회 삼아야
국제투명성기구의 지난 2014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청렴도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여전히 최하위권 수준이다. 부패사범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과 함께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접대·로비문화와 전관예우, 관피아 문제의 해결이 시대적 과제임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성적표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 이후 관피아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방지법'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고 정무위는 국민적 요구에 따라 1월12일 법안을 의결했다. 그런데 지난해 내내 이 법의 조속한 통과를 주장해온 언론과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서 정무위가 통과시킨 법안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 비판 중 상당 부분은 왜곡된 사실에 기초한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김영란법 원안은 공무원 혹은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했는데 정무위에서 이를 민간으로 확대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 법은 최초 입법예고 당시부터 공무원 외에 수십만 명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정무위안의 대상이 가족 포함 1,800만명(추산)이라 하나 원안대로 해도 가족 포함 적용 범위는 1,500만명(추산)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사립학교 교직원의 경우 교육 비리가 주로 사학에서 발생하는 상황에서 정작 사학은 배제하고 국공립학교만 규율하는 것은 입법 취지상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 여야를 불문하고 일치된 의견이었다. 언론의 경우도 원안에 이미 일부 언론이 포함돼 있었을 뿐 아니라 원안의 적용 대상인 공직 유관단체들과 비교할 때 공공성이 더 강한 언론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출신인 권익위원장이나 공청회에 참여했던 법률가들 역시 입법 정책적 판단의 문제이지 위헌의 소지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학과 언론 전체를 포함하는 내용은 지난해 5월 법안소위에서 합의해 언론 발표까지 한 사안이다. 그런데 8개월이 지나 문제가 있다 하니 유감스러울 뿐이다. 솔직히 법안 처리가 안될 것을 기대하다가 대상이 일부 언론사에서 전체 언론사로 확대됨에 따른 직역적 저항이 언론과 그 영향을 받는 정치인들의 반론으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싶어 씁쓸하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의 오랜 접대·로비 관행상 이 법의 충격이 큰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2004년 선거법 개정으로 국회의원의 주례, 경조사비, 유권자·당원에 대한 식사·금품 제공을 전면 금지한 것도 건국 이래 이어진 선거문화에 비춰보면 대단히 획기적인 조치였다. 선거법은 김영란법보다 더 엄격해 설렁탕 한 그릇만 먹어도 후보자는 물론 유권자까지 제재를 받는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조치였지만 이후 깨끗한 선거문화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 법은 고질적인 로비·접대문화를 개선하고 투명하고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점은 시행과정에서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왜곡된 사실에 근거해 이 법을 후퇴시킨다면 우리는 그 문제를 보완할 기회도, 보다 깨끗한 사회로 발전할 기회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최대 2000만명 잠재적 범죄자 취급
과잉금지·자기책임 원칙 위배 가능성
사회복지 담당 시청 공무원 A씨는 죽마고우 B씨의 부탁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어려운 처지의 독거 노인이 계시는데 시 사회복지 보조금을 꼭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보조금 집행기준을 검토해보니 기준에 조금 미달하는 분이지만 재량의 여지도 있어 보인다. 최근에 시행된 '김영란법'을 찾았다. 법에 따르면 즉시 거부의 의사 표시를 해야 하고 다시 부탁을 해오는 경우 시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럴 경우 친구 B씨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B씨의 부탁대로 일을 처리할 경우 자신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위 사례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김영란법'은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공직자의 복지부동이 우려된다. 금품 수수가 없더라도 금지되고 형사처벌까지 부과되는 부정청탁의 유형을 15가지로 분류해놓았는데 따져보면 관공서에서 처리하는 민원성 업무 전부를 열거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에게 '김영란법'을 보여주며 부정청탁이라고 할 것이다.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관공서의 문턱이 성벽이 된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넋 놓고 앉아 관리들의 입만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부정청탁으로 보지 않는 예외 사유도 졸렬하다. 여섯 가지 예외 사유를 열거한 후 마지막으로 '그 밖에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부정청탁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놓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셈이다.
둘째, 적용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다. 공무원·공공기관 임직원을 비롯해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 교직원도 포함돼 있고 그 가족들(민법의 가족으로 부모·형제자매도 포함)까지 망라돼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당사자는 215만명에 이르고 민법의 가족을 10명으로 치면 최대 2,000만명 이상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게 된다. 사립학교 교직원, 민간 언론사 기자의 가족이 친구에게 생일선물만 받아도 법 위반 여부가 문제 된다. 수사기관만 영향력이 확대돼 좋을 것이라는 얘기가 이래서 나온다. 민간 부문에 국가가 형벌권을 통해 개입하는 것은 아무리 입법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헌법상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금지되는 금품 수수 기준도 이해하기 어렵다.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한 명으로부터 1회 100만원 또는 1년 통산 300만원 이상을 받으면 형사처벌 대상이다. 반대로 10명, 100명으로부터 이 액수 미만의 떡값을 받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정한 직무 수행을 저해하는 부정청탁 관행을 척결하고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근절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다.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 헌법상의 과잉금지의 원칙, 자기책임의 원칙에 위배되는 소지가 없는지 꼼꼼히 따져볼 생각이다. 국회가 위헌 법률을 통과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