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제 도입 신중 기해야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해 주민들에게 직접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제`의 도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주민투표제는 지방자치제도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취지는 좋으나 정략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많다. 뿐만 아니라 지역현안 결정 방식을 정하는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국가운영 메커니즘의 근본적 틀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주민투표가 도입되면 주민의 참여와 책임의식 제고, 지역간 갈등조정 및 통합, 지방의회와 단체장의 정치적 부담 경감 등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분열, 정치적 이용 가능성, 지방의회 기능 위축, 단체장과 지방의회의 책임회피 수단으로의 남용 소지 등 우려가 제기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행자부가 지난 28일 공개한 주민투표법 초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지방주민과 지방의회,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은 단체장이 실시를 청구할 수 있고, 대상은 ▲자치단체의 고유권한에 속하는 공공시설 설치 ▲사무소 소재지 변경 ▲읍면동 통폐합과 분리 ▲기타 조례에서 정하는 사항 등 4개 사안으로 돼 있다. 또 특례조항으로 국가정책에 대한 자문형 주민투표제를 도입, 관련부처 장관이 정책결정의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 초안을 보면 논란의 소지가 상당히 많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간 이해관계가 다른 경우 투표의 대상을 어떻게 정하는 가다. 가령 서울시가 서초구에 추모공원을 짓는 문제에 대해 서울시의 사업이라는 이유로 서울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투표를 한다면 과연 그 결과에 대해 서초구민들이 수긍할 수 있을까. 또 행자부 안대로 투표권자 3분의 1 이상 투표에 투표자 과반수 찬성으로 결과가 확정된다면 결국 전체 주민 가운데 17% 미만의 의사로 중요한 현안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일부 적극적인 소수에 의해 민의가 왜곡될 개연성이 높아진다. 구속력이 없이 단순히 참고자료로만 쓴다면서 굳이 중앙정부가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것도 오히려 혼란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지자체의 중요한 결정은 기본적으로 지방의회에 맡겨야 한다. 지방의회가 대표성이 적고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고 해서 주요현안을 주민투표제로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한다고 해서 주요 국정현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에서 직접 참여정치를 하기란 여간 어렵지가 않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스위스가 주민투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지만 프랑스의 경우는 올해 3월에야 비로소 도입 근거를 마련했으며, 일본은 아직 주민투표에 관한 일반법을 갖추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오래된 나라들이 주민투표제에 대해 미온적이었던 이유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김문섭기자 cloone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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