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배인식 그래텍 대표



“최소 7년 동안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6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서울 역삼동 그래텍 본사에서 만난 배인식(43·사진)대표는 몽상가로 알려져 있다. 불법 콘텐츠가 넘쳐나는 인터넷 상에서 합법적인 콘텐츠 유통을 통한 수익창출을 꿈꾼다. 실제 그래텍이 서비스하는 곰TV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자와의 협의를 통해 확보한 자료들이다. 이러한 사업 방식 때문에 최소 7년은 손해를 볼 것이라 예상했지만 적자 탈출 시기는 예상보다 2년 빨랐다. 몽상 같던 선택이 성공한 것이다. 배 대표는 대학생 시절에도 꿈을 좇기에 바빴다. 컴퓨터에 빠져있던 지난 1987년에는 유니코사(UNICOSA)라는 전국대학컴퓨터서클연합의 18대 회장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 한양대 컴퓨터 동아리를 이끌고 있던 김장중 이스트소프트 대표나 아래아한글 제작에 한창이던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 및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만난 것도 다 유니코사에서였다. “제가 유니코사 회장을 맡고 있던 1980년대만 해도 PC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괴짜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지금처럼 벤처 열풍도 없었기 때문에 유니코사는 그저 PC가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IT업계의‘세시봉’ 같은 집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몽상가도 밥벌이는 해야 했다. 그는 1993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삼성전자에 들어간다. 그 곳에서 4년7개월 동안 게임 관련 제품 기획을 담당하며 많은 시행착오 속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당시 삼성전자에서 국내 게임 개발자들을 만나 게임을 출시하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게임 개발을 맡기기 위해 데려온 친구들이 며칠 만에 힘들다고 도망가는 경우도 많아 시말서만 수십 번 썼습니다. 국내산 게임 개발보다는 해외에서 게임을 들여와 서비스 하는 일이 더 수익성이 높다고 판단하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래도 당시의 고생 덕분에 현재 게임업계의 거물이 된 사람들과 돈독한 친분을 쌓게 된다. ‘라그나로크’를 만든 김학규 IMC게임즈 대표나 ‘마비노기’를 만든 김동건 넥슨 본부장 등이 지금도 그와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삼성전자에서의 그의 활동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 삼성전자가 정보기술(IT)업계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지원 프로그램인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멤버십’의 운영도 담당, 인맥을 더욱 넓히게 된다. “메이플스토리를 만든 이승찬 넥슨 신규개발본부장이나 지란지교소프트의 오치영 대표 등이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멤버십 출신입니다. 당시 수많은 괴짜들이 그 프로그램에 모여들었죠.” 많은 열정을 쏟아 부었던 제품기획팀에서 전략기획팀으로 부서가 바뀌게 되자 그는 이전만큼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결국 회사를 나오게 된다. 그렇게 회사를 나온 뒤 지인들과 손을 잡고 만든 회사가 국내 최초 모바일 게임회사로 손꼽히는 지오인터랙티브다. “처음엔 열심히 일하며 회사를 성장시키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오인터랙티브를 창업한지 5개월만에 IMF사태가 터지면서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당시 저희를 살렸던 프로그램이 ‘팜골프’라는 PDA용 게임이었습니다.” 배대표는 팜골프를 홍보하기 위해 독일의 가전전시회인 ‘세빗쇼’에서 홍보전단을 돌리는 등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이 덕분에 팜골프는 카시오와 EA 등 글로벌 업체와 수출계약을 맺으며 전세계적으로 매출만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소위 ‘대박’을 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팜골프가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 회사를 나왔다. “지오인터랙티브가 개발자 중심의 회사가 되길 바랐지만 당시 김병기 대표는 저와 시각이 달랐습니다. 그렇게 나와서 만든 회사가 바로 지금의 그래텍입니다.” 그는 지인들과 1999년 그래텍을 창업하며 이번에는 ‘팝폴더’라는 웹하드 서비스를 통해 가상 저장 공간 서비스 사업에 뛰어든다. 팝폴더는 20메가바이트(MB)의 웹하드 공간을 무료로 제공한 이후 점차 저장 공간을 1GB까지 늘리며 국내 최대 용량을 자랑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스타워즈 에피소드1’이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나게 된다.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당시에는 이용자들이 기껏 써봐야 200MB 정도만 사용할 것이라 봤습니다. 헌데 스타워즈가 출시된 후 팝폴더를 통해 영화를 공유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서버에 갑작스런 부담이 생겼습니다. 덕분에 가입자 수는 100만명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다소 어려움을 겪었지요.” 웹하드 서비스업으로 입지를 다진 그래텍은 이후 팝폴더 용량을 100GB까지 늘리고 파일공유(P2P) 사이트인 ‘구루구루’를 출시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구루구루는 어느새 음란물이나 불법 콘텐츠의 유통 경로가 돼 버렸습니다. 사업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구루구루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항상 불안해하며 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죠.” 그는 이외에도 ‘메이플스토리 모바일’ 등으로 수익을 내고 있던 게임 부문도 정리하게 된다. 이렇게 사업 정리를 통해 확보한 에너지를 곰TV에 쏟아 붇게 된다. 이후 곰TV는 다운로드 수 1억회를 돌파한 곰플레이어의 인기와 함께 시장에 안착하게 된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전세계 사람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함께 즐길 수 있게 하는 곰TV는 이전부터 제가 꿈꿔오던 최종 목표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는 모두 곰TV를 만들기 위해 겪어왔던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벤처업계의 흥망성쇠를 맨몸으로 겪어온 그는 새로이 사업을 준비하는 젊은 벤처인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현재 국내 IT 업계를 이끌고 있는 NHN이나 엔씨소프트, 넥슨의 창업주들은 67년, 68년 생입니다. 그들은 다른 세대에 비해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지금 세대에 비해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IT는 분야는 항상 변하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기다리다 보면 반드시 새로운 기회가 찾아옵니다. 사고의 유연함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기회가 찾아오리라고 봅니다.” 실제 그의 삶은 앞서의 충고보다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약력> ▦1968년 서울생 ▦1986년 충암고 졸업 ▦1993년 국민대 금속학과 졸업 ▦1993년~1996년 삼성전자 멀티미디어제품 기획 담당 ▦1997년~1998년 지오인터랙티브 기획이사 ▦1999년~2002년 그래텍 부사장 ▦2002년 그래텍 대표 ▦2003년 벤처기업대상 국무총리표창 수상 ▦2006년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 수상 ▦2007년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정보통신부 장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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