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군과 친러 무장시위대 간에 유혈교전이 벌어진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러시아군이 투입된 정황들이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서방의 방위협력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인근 지역 병력증강을 검토하고 나섰다.
비탈리 야레마 우크라이나 제1부총리는 15일(현지시간) 영국의 채널5 방송에 출연해 "러시아의 45공수연대가 슬라뱐스크와 크라마토르스크 등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투입됐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서방국가들은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10여곳에서 친러 무장시위대가 관청 등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해왔으나 특정 부대를 거론할 정도로 세부 정보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나토는 지난달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접수한 후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군병력 4만명을 배치했다고 주장한 데 이어 최근에는 수호이(Su)-27전투기와 하인드 헬리콥터 등을 추가 배치한 정황이 담긴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이처럼 러시아의 군사개입 우려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데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은 "군사적 해법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우회적 방식을 통해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치고 있다.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 물자를 보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살상무기는 현재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경제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오바마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군사원조를 제공하기 위한 문을 열어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껏 '구두경고'에 그친 나토의 대응도 주목된다. 스티븐 피퍼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는 "대규모 군 병력 이동은 아닐지라도 중부유럽이나 발트해 국가 등에서 나토의 움직임이 강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도 최근 국내 TV 인터뷰에서 "동유럽에서의 나토 병력증강 차원에서 미국이 폴란드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유럽연합(EU) 국방장관회의에 참석해 "군사 옵션을 의논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한편 동부지역을 점거한 무장시위대에 대해 15일 대테러 작전에 들어간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시 인근의 군용 비행장을 재탈환했다. 이때 발생한 교전으로 최소 4명에서 많게는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러시아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상 우크라이나가 내전 직전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작전이 헌법에 위배되는 만큼 국제사회의 '분명한 비난'을 기대한다"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푸틴의 이 같은 '강온 양면' 전술이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과 EU·러시아·우크라이나가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4자회담'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