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행'이라는 단어가 '힐링'에 이어 새롭게 떠오르는 문화 키워드가 되는 듯하다. 아빠와 아이가 동행하는 하루가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이 도보로 긴 동행 길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바쁜 일상에서 잠시 잊었던 우정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필자가 겪었던 '진정한 동행'의 경험이 떠올랐다.
필자에게는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는 형이 있다. 나이 차이가 꽤 있고 어렸을 적 부모님과 떨어져 단 둘이서만 유학 길에 오른 탓에 더 의지한 것도 있겠지만 항상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이끌어주는 형의 모습이 든든함을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새삼스레 느끼는 것은 형이 어린 나이였음에도 이미 동행의 노하우를 알고 실천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형은 항상 '속도'를 강조했다. 삶과 배움에 있어 빠르고 늦음은 제각각이겠지만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그리고 상사와 부하 등 누군가와 동행을 하고 있다면 상대방의 속도에 맞춰야 했던 것이다. 이제 갓 백일 넘은 딸아이를 키우면서도 속도의 중요성을 알아가고 있다. 단지 기다리거나 다그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속도에 강약을 줘 가르치면서 함께 성장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형은 '단계'를 매우 중시했다. 하루빨리 자전거를 타고 싶은 필자에게 어느 날 형은 자전거 마스터 5일 플랜을 가지고 왔다. 첫날은 형이 앞에서 이끌어주고 이튿날은 뒤에서 밀어주고 삼일째는 바로 옆에서 함께 걸어주고 나흘째 차가 없는 곳에서 혼자 탈 수 있게 허락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상대적으로 복잡한 공원 한복판에서 자전거를 타도록 한 덕택에 또래 누구보다 자전거를 빨리 배운 아이가 돼 있었다.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종국에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던 것이다.
필자의 회사는 미국계 기업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해 올해 2주년을 맞이했다. 5년여 만에 전 세계 48개국에 진출하면서 가장 빨리 성장한 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꼭 겪어야 했던 단계를 밟아가지 못해 큰 성장통을 겪고 있다. 다행히 지금 전사 임직원들이 놓쳤던 단계를 밟아가며 내실을 다지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직원들도 팀을 위해 속도를 맞추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동행이 시작됨을 느낄 수 있다.
속도와 단계는 얼핏 보면 대조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정한 동행은 대조되는 서로의 모습이 나름의 방식으로 어우러져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여겨진다. 지금 옆에 함께 꿈을 꾸고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가족, 동료, 친구가 있다면 한마디 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랬구나, 네가 그랬구나"라고 말이다. 필자가 낙심할 때마다 형이 해줬던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