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 강세… 유로화 출구전략 도피처로 떠올라

달러·엔화보다 적은 유동성 매력
신흥국서 빠진 자금 빨아들이며 달러 대비 가치 4개월 만에 최고


미국의 출구전략 가능성으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유로화가 어부지리를 누리고 있다. 아시아ㆍ중남미 등 신흥국에서 빠져나온 글로벌 자금들이 달러화와 더불어 양대 기축통화인 유로화로 도피하며 통화가치가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양적완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유로화가 투자자들 사이에 궁여지책으로 부상하며 통화가치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기가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달러화ㆍ엔화 등 다른 기축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덜 풀렸다는 점이 투자매력을 높이고 있다.

실제 유로화 가치는 지난 한달 동안 달러화 및 엔화 대비 4%가량 올랐다. 달러ㆍ유로 환율은 지난주 말 유로당 1.3345달러를 기록하며 유로 가치가 4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추가적인 유로화 강세를 예상하는 투자자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최근 2주 동안 유로화 약세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종전 대비 90% 가까이 줄어들었다.

WSJ는 "유로화의 통화거품이 상대적으로 적어 안정적인데다 경제위기 가능성이 줄어든 반면 기축통화의 위치는 여전해 매수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유로화를 변동성 국면의 피난처로 평가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몇년간 진행돼온 유로캐리트레이드가 청산되기 시작한 점도 통화강세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지속적인 금리차이를 활용해 이율이 낮은 유로화를 차입한 뒤 호주 통화나 멕시코 국채 등 고금리 자산에 투자해온 투자자들이 최근 금리변동성 국면을 맞아 캐리트레이드에서 앞다퉈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이래 유로 가치는 캐리트레이드에 주로 활용돼온 호주 통화 대비 10%가량 상승했다.

하지만 유로존 입장에서는 이 같은 유로화 강세가 반갑지만은 않다. WSJ는 "미국의 출구전략이 시작될 때까지 유로 강세가 이어지겠지만 유로존 경제가 6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점 등을 감안하면 펀더멘털을 고려한 오름세는 아니다"라면서 "환가치가 오르면 남부유럽 국가의 수출 이익이 더 줄어들며 경제회복을 옥죌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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