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화학협회 내부자료는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이 발의안대로 시행될 경우 국내 화학산업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화학산업은 5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 전체의 95% 이상을 차지한다"며 "원안대로 배상책임을 기업이 전적으로 부담하게 되면 화학산업을 떠받치는 95%의 기업 존폐가 결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ㆍ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 27개 단체가 이날 국회를 찾아 환경오염피해구제법에 대해 건의한 내용의 핵심은 "환경보호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처럼 산업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날 27개 단체가 건의한 세부내용을 보면 우선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의 시행시기가 조정돼야 한다는 업계의 요구가 담겨 있다. 당초 환경부는 정부입법으로 추진하려 했으나 특별한 이유 없이 의원입법으로 방향을 바꿨다. 국회에 계류 중인 의원입법 안에 따르면 법 시행시기가 오는 2015년 1월1일로 돼 있다. 업종 단체의 한 관계자는 "일부 대기업만 환경규제 관련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라며 "충분한 홍보기간을 가진 후 점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정보청구권 개선 역시 재계의 건의사항이다. 원안에 따르면 환경부 장관은 기업이 영업상 비밀 등의 이유로 정보제공을 거부하는 경우 환경오염피해구제정책위원회 심의를 거쳐 정보를 제공하도록 명할 수 있다. 한마디로 기업들은 사실상 조건 없이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는 기업에 큰 부담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계는 위원회 심의시 정보 제공 또는 열람을 거부할 있도록 법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위원회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항을 법에 넣지 않으면 영업상 비밀 등 수많은 자료가 노출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상책임한도 규정 부분도 재계가 보완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계류 중인 법안에서는 배상범위한도를 2,000억원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안전관리 기준 미준수 등 세 가지 경우에는 무한배상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안전관리 기준 미준수는 사고와 직접 관련이 없을 수도 있고 수많은 안전관리 기준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공무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안전관리 기준 미준수를 근거로 무한배상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재계는 인과관계 추정제도 도입과 관련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 조항은 해당 시설이 피해발생에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상당한 개연성이 있을 경우 명확한 입증이 없어도 해당 시설을 운영하는 사업자에게 피해배상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재계는 이에 대해 "시설이 적법하게 운영되고 있는 때는 규정을 적용하지 말아달라"고 건의했다. 이 같은 조항이 들어가지 않으면 사업자의 과실 여부를 떠나 피해배상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입장이다.
이 밖에도 재계는 환경책임보험의 합리적인 보험료 산정도 요구했다. 보험료가 기업의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재계는 환경책임보험 도입시 기업들이 부담할 총 보험료 산출작업을 하려 했으나 환경부가 밑바탕이 되는 기초자료를 내놓지 않아 미룬 상태다.
환경부는 곧 보험료 산정을 위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산업계는 이에 맞춰 환경책임보험에 대한 입장도 밝힐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