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국내 영화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약한 영화사로는 단연 싸이더스픽처스가 꼽힌다. 지난 해 초 ‘지구를 지켜라’ 흥행 참패 후 파간 위기에까지 몰렸지만 ‘살인의 추억’이 전국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기사회생 했고 올 들어선 ‘말죽거리 잔혹사’부터 ‘내 머리 속의 지우개’까지 연관객 1,200만명을 모았다. 국내 영화관객 4명 중 1명이 ‘싸이더스표’ 영화를 본 셈이다. 싸이더스의 30번째 작품 ‘역도산’(감독 송해성) 개봉을 일주일 여 앞두고 만난 차승재 대표(44)는 “30이란 숫자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진 않다”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올해 작품 중 가장 공을 들였다”며 기대를 내비쳤다. 기획을 시작한 지 3년 반, 촬영 1년 여 만에 관객과 만나는 ‘역도산’은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개봉작 중 가장 많은 11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다. 국내 관객 300만명을 모아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차 대표는 “흥행은 하늘에 뜻에 달렸지만 ‘살인…’의 기록은 넘어서고 싶다”고 말했다. “주인공을 맡은 설경구의 ‘노동’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의상, 거리재현 등 미술 쪽에 특히 신경 썼어요. 역도산이 63년 숨을 거둔 인물인 만큼 40대 이상 장년층 관객에게도 충분히 먹힐 수 있을 겁니다.” ‘역도산’은 국내와 일본 시장을 동시에 겨냥한 영화다. 이미 일본엔 소니픽처스로 250만 달러에 선판매돼 내년 6월 개봉 예정이다. 한류 열풍을 가장 실감할 법도 하지만 차 대표는 “여태껏 한류 4대 천황과 작품을 못 해봤다”고 웃으며 “영화는 스타 마케팅이 아닌 작품성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껏 일본에서 성공한 한국 영화들은 이른바 ‘웰 메이드(Well-made)’ 작품입니다. 세계 어디서나 우리 영화는 제 3국 영화에요. 스타만을 내세워 작품성도 없는 영화를 비싸게 팔면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올 초 싸이더스가 코스닥 등록사인 통신ㆍ보안업체 시큐리콥의 100% 자회사로 편입한 데 이어 차 대표는 지난 10월 1대 주주가 됐다. 그는 “영화 한 두 편의 흥행에 휘둘리지 않고 제작의 안정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일 뿐”이라고 말했다. 극장업 진출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대기업이 장악한 극장 사업에 뛰어들려면 최소 1,000억원 이상의 자본이 필요하다”며 부정적인 뜻을 내비치며 “여건이 되면 배급 사업을 할 의지는 있다”고 밝혔다. 어느 덧 싸이더스는 태흥영화사를 제외하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한 회사가 됐지만 차 대표는 “아무리 노력해도 관객의 입맛은 모르겠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관객은 매일 바뀌어요. ‘가문의 영광’을 본 500만명이 그대로 ‘살인…’도 보는 게 관객이에요. 이 흐름을 읽을 수만 있다면 빌 게이츠보다 더 큰 부자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