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이 6일 전격적으로 반도체사업을 포기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앞으로 통합 반도체회사가 어떤 모습으로 탄생될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특히 具회장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생일인 6일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현대와의 통합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었다.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합병과정이 숱한 산고(産苦)를 겪은 만큼이나 통합 반도체회사의 탄생은 재계 판도변화는 물론 세계 반도체시장의 흐름까지 뒤집어 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LG 왜 입장 바꾸었나= 우선 모든 주변환경이 LG에 불리했다. 채권금융단의 금융제재가 기존여신 회수 등 극단적인 양상으로 비화되지는 않았지만 신규여신 중단등 상징적인 조치들이 그룹 전체에 불안감을 안겨준게 사실이다. 금융제재는 반도체 빅딜이 파행으로 치달은 책임을 LG에만 묻는다는 상징적 의미도 강했다. 일부에서 동정론이 일기는 했지만 지난해 12·7 정재계합의를 뒤집었다는 본질적인 비난에 시달려왔다.
또 하나는 반도체 빅딜이 지체될 경우 미칠 파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시각이 확산됐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생각하는 파장의 강도에 비해 외국의 시각은 더 냉혹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는 지난 5일 『현대와 LG간 마찰이 반도체통합을 지연시키는 한편 한국정부에 의한 재정적 페널티 부과도 초래하고 있다』며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무디스는 또 『빠르게 변모하고 기술집약적인 반도체산업에서는 신속하게 전략을 수립해 이행하는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혀 통합속도가 반도체 통합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관건임을 지적했다. 외국 투자자들의 시각에 민감한 정부로선 이런 평가가 상당한 부담이었고 LG측에도 유무형의 압박요인으로 작용했다는게 일반적인 평이다.
지난 4일 양 그룹 총수의 회동이 성과없이 끝난 것으로 공식발표된 뒤 한때 『총수회동은 모양새 갖추기에 불과했던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지만 이날 전격적으로 발표된 LG의 통합동의방침으로 볼 때 당시 상당히 깊숙한 대화가 오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당시 총수회담을 통해 LG가 반도체부문에서 양보하는 대신 현대의 다른 계열사를 넘겨받거나 정부로부터 통신사업 등에서 일정한 댓가를 얻는 보상빅딜에 합의했을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게 나돌고 있다.
◇향후 파장=빅딜이 구조조정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기업구조조정이 다양한 형태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등 다른 구조조정방안에 비해 빅딜은 어려움이 많았고 그만큼 실현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강했다. 반도체빅딜에서 큰 진전이 이루어진만큼 통신이나 석유화학 등의 2차 빅딜이 탄력을 받는 것은 물론 1차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웬만한 저항은 구조조정의 당위성에 밀려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나 LG의 향후 경영구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LG는 반도체부문을 떼어낸 뒤 그룹의 정체성을 원점에서 되돌아봐야 할 전망이다. 또 반도체빅딜과정에서 악수(惡手)를 연발하며 스스로 입지를 좁혀버린만큼 책임소재를 따지는 작업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현대로선 재계서열 1위 자리를 완전히 굳히는 계기가 되겠지만 동시에 『구조조정은 현대를 위한 잔칫상』이라는 세간의 저항감을 어떻게든 잠재워야하는 과제도 동시에 안게됐다. 결코 쉽지않은 과제다.
◇초대형 반도체 전문회사 탄생=새롭게 탄생하는 통합법인은 반도체만 생산하는 전문회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사의 통합실사를 맡은 아서 디 리틀(ADL)은 지난달 24일 내놓은 실사평가 보고서에서 현대가 통합법인의 경영주체가 될 경우 꼭 지켜야 할 사항으로 반도체가 아닌 사업의 조기정리 출자 및 지급보증 관계 금지 독립이사회 구성 등을 명시했다.
이같은 주문은 통합법인이 반도체이외에 다른 사업을 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대 관계자는 『ADL의 3가지 조건은 독립경영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순수 반도체 전문회사로 육성하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서 『이 조항을 준수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의 통합은 특히 외형은 물론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세계반도체업계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외견상의 변화만도 엄청나다. 자산규모 18조5,000억원(97년말기준), 연간 매출 5조5,0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회사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세계시장 점유율면에서도 삼성전자(점유율 18.8%)에 이어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점유율 2위 업체로 부상하게 된다.
현대전자가 9%, LG반도체가 6.7%로 업계 4위와 6위에 각각 랭크됐으나 두 회사의 합병으로 점유율이 15.7%로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부동의 2위자리를 고수해온 일본 NEC와 최근 TI사를 인수해 2위업체로 급부상한 미국 마이크론(14.1%, TI 합병부문 포함)을 단숨에 제치고 세계 2위업계로 올라선다.
합병회사의 위력은 이같은 단순 수치개념을 훨씬 능가한다. 생산설비를 기준으로 보면 현재 주력제품인 64MD램은 월 2,700만개, 16MD램은 4,800만개. 삼성전자의 생산량이 각각 2,000만개, 1,500만개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생산능력기준으로 세계 1위업체가 돼 반도체 국제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게 된다.
생산라인도 2개회사를 합치면 모두 17개로 8개라인을 갖고 있는 삼성에 비해 2배 가량 많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투자비를 대폭 줄이는 한편 잇달아 생산공장을 폐쇄한 점을 감안하면 통합반도체회사는 생산량 면에서 세계시장의 20%가량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회사의 향후 경영계획=현대는 6일 「통합반도체회사의 경쟁력 제고 방안」이라는 자료를 통해 연구개발 강화, 수익성 최우선, 경영투명성 확립 등을 통해 세계 제1위의 D램 업체로 부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대는 특히 통합법인의 지분구조를 현대와 LG가 각각 7대3의 비율을 유지하는 가운데 자산매각, 유상증자, 외자유치 등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통해 올해말까지 통합법인의 부채비율을 200%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현대는 이와관련 4월말까지 비반도체 사업(통신, 모니터, LCD, 전장)을 현대가 출자하는 새로운 법인에 양도, 현대전자에서 완전히 분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대는 이미 지난해 4월 셋톱박스와 디지털비디어디스크(DVD) 부문을 분사, ㈜HDT로 독립시켰고, 7월에는 PC사업부를 ㈜멀티캡으로 분사시켰다.
LG반도체 역시 TFT-LCD 사업부문을 이미 LG-LCD로 분리한 상태여서 통합법인은 순전한 반도체 전문회사로 재탄생하는 셈이다. 【손동영·고진갑·김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