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상황에 도전하는 인간의 욕망

'남극일기' 촬영현장 뉴질랜드 남섬을 가다

내년초 개봉할 '남극일기' 제작진들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뉴질랜드 고지 '스노우 팜'에서 영화 제작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한 해발 1,700m 고지의 스노우팜(snow farm). 찌는 듯한 무더위가 이어지는 한국과 다르게 10일 이 곳은 끝없이 펼쳐진 설원 위로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다. 바로 이 곳에서 송강호ㆍ유지태 등 배우들과 임필성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체감온도 영하 15도의 강추위와 연일 씨름하며 ‘남극일기’(제작 싸이더스) 촬영하고 있다. ‘남극일기’는 남극의 도달 불능점(남극대륙 해안에서 가장 먼 지점. 58년 소련 탐험대가 단 한 번 정복한 곳)에 도전하는 6명의 남극탐험대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그러나 제작진은 ‘K2’나 ‘버티컬 리미트’와 같은 휴먼 드라마가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영화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그려낸 공포물에 가깝다. 영화는 남극을 그저 자연 풍경으로서가 아닌 인간의 욕망을 허락하지 않는 ‘인격체’로 그려내고 있다. 남극 탐험이란 독특한 소재를 다루는 만큼 촬영장엔 무시무시한(?) 장비들로 가득하다. 초속 40m 이상의 바람을 만들어 내는 강풍기를 비롯해 영화에서 배우들이 끌어야 하는 썰매는 60kg가 넘는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선 스태프의 힘이 절대적이다. 올 초 최단기간(44일) 남극점 도보 정복에 성공한 산악인 박영석씨가 ‘탐험 슈퍼바이저’란 이름으로 시나리오 감수와 배우 훈련을 담당하고, ‘반지의 제왕’ 특수효과를 맡았던 웨타 워크숍 팀을 비롯한 30명의 현지 스태프가 50명의 한국 스태프와 함께 일하고 있다. 8일 현지 제작발표회에서 제작진은 영화가 성공할 것이란 자신감을 한껏 드러냈다. 탐험대장 최도형 역으로 나오는 송강호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그려낸 시나리오가 마음에 와 닿았다”며 “어려운 도전이기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고 밝혔다. 탐험대 막내인 김민재 역을 맡은 유지태는 “밀도 있는 감정 변화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작품에 임하는 소감을 나타냈다. 현재 40% 촬영이 끝난 ‘남극일기’는 25일까지 뉴질랜드 로케를 끝내고 10월 말까지 한국 촬영분을 마무리한 뒤 후반작업을 거쳐 내년 초 개봉할 예정이다.
■ 인터뷰 : 임필성 감독
"제작과정 힘들수록 작품완성 오기생겨"
'남극일기'는 임필성 감독의 데뷔작이다. 첫 작품을 만드는 건 어느 감독에게나 쉽지 않지만, 임 감독에게 이 영화는 '남극 탐험의 여정'이라는 내용만큼이나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난 99년 가을, TV에서 우연히 본 남극 횡단 다큐멘터리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지만 이후 영화를 제작하기까지는 시나리오 수정만 세 번, 프로듀서가 일곱 번 바뀌면서 5년 여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 "분명 경쟁력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워낙 투자 위험성이 크다 보니 제작사들이 꺼려했다. 계속 난항을 겪을수록 오히려 반드시 작품을 완성해야 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임 감독은 "'남극일기'는 관객을 '이해 시키는' 영화가 아닌 '체험 시키는' 영화"라고 말한다. '탐험대가 왜 남극에 가야만 했는지', '동료가 죽어가는데도 왜 '도달 불능점'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피부로 느껴야만 작품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감독은 "남극을 '캐릭터'화 시켜 하나의 등장인물로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질랜드에서 전체 촬영분의 55% 가량을 소화하는 만큼, 현지 스태프와 함께 일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였다. 다행이 현재까진 순조롭게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임 감독은 "'반지의 제왕'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와 CF를 찍었던 곳"이라며 촬영지 스노우 팜에 만족을 표했다. 촬영 점검차 현지에 들른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는 "세계적 촬영지에서 현지 스태프들과 무리없이 협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영화계의 발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