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들] 현대모비스 "車부품 전문업체로"

'백화점식 사업' 정리 '알짜' 변신…완성차·공작기계등 넘기고 AS부품사업 인수
2000년 社名도 바꾸고 전문기업 도약 첫발…전세계 공급망 구축하며 年 30%대 고성장





한국경제에 휘몰아친 외환위기 한파가 미처 가시지 않았던 1999년초. 당시 현대정공(현대모비스 전신)을 이끌던 박정인 사장(현 현대ㆍ기아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굳은 표정으로 계동 현대사옥으로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정몽구 회장에게 보고할 두툼한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보고서의 핵심내용은 현대정공을 현대ㆍ기아차를 배후에서 지원하는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으로 키우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현대정공이 현대ㆍ기아차의 애프터서비스(AS) 부품사업을 인수하고 모듈사업에 새로 진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그룹 차원에서는 사업영역 조정을 통해 완성차 제조는 현대차로, 철도차량은 로템으로 각각 넘기는 등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하던 시기였다. 범 현대그룹의 계열분리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정 회장은 박 사장이 제시한 현대정공의 청사진을 받아 들고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특유의 결단력을 발휘해 “그대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힘을 얻은 박 사장은 곧바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미리 준비했던 대로 ‘부품사업 양수도 계획’을 만들어 이계안 현대차 사장과 김수중 기아차 사장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의 차 부품 전문회사’를 향해…=현대정공은 이어 2000년말 현대ㆍ기아차의 부품사업을 통합하면서 사명을 ‘현대모비스’로 바꾸고 ‘제 2의 도약’을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현대정공은 그 이전까지만 해도 완성차(싼타페ㆍ갤로퍼) 제조, 철도차량, 컨테이너, 공작기계, 환경설비 등 그야말로 ‘백화점식’ 으로 사업을 꾸리고 있었다. 그러나 AS사업 통합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기존 사업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먼저 공작기계와 완성차 제조사업을 먼저 떼어 내 자동차에 넘겨주고, 중장비와 환경사업을 정리했다. 그 결과 한때 자산규모 2조6,000억원 규모의 외형을 과시하던 현대정공은 선택과 집중의 ‘다이어트’를 통해 자산 1,800억원의 알토란 같은 회사로 변신했다. 현대정공은 최고 경영진의 미래를 내다본 결단을 바탕으로 모든 사업을 정리하면서 AS부품 사업에 새로 뛰어들었고, 이는 현대모비스가 국내 최대의 자동차 부품 전문회사로 올라서는 결정적인 밑거름으로 됐다. ◇“글로벌 부품공급 체인을 구축하라”=현대모비스가 부품사업을 통합하던 2000년은 현대ㆍ기아차의 글로벌 성장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시기였다. 당시 해외 판매가 급성장하면서 해외시장에서의 철저한 AS서비스가 곧바로 브랜드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2000년 2월에 현대차 AS부품 사업을 시작하고, 같은 해 12월 기아차 AS부품 사업도 인수다. 당시 최대 목표는 그동안 별도로 운영돼 왔던 현대ㆍ기차아의 AS부품 사업을 하루빨리 재정비해 보다 나은 서비스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곧바로 테스크포스팀을 구성, 국내외 AS부품 물류망을 구축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만들었던 게 맞아떨어졌다” (정남기 현대모비스 부품영업본부장) 현대모비스를 이를 바탕으로 2007년까지 총 17개의 해외 권역별 독자 물류거점을 확보하는 전략을 마련했다. 이어 곧바로 세계 각지에서 물류센터 건설에 착수, 독일 브레멘(2003년), 미국 마이애미ㆍ중국 베이징ㆍ러시아 모스크바(2004년) 등에 물류법인을 하나둘씩 세워나갔다. 유럽과 중국 등에까지 물류센터가 만들어지면 전세계에 걸쳐 거미줄 같은 부품 공급망이 갖춰지는 셈이다. ◇“2010년 글로벌 톱10에 올라선다”=정 회장과 박 사장의 ‘1999년 결단’을 통해 부품 전문기업으로 변신에 나선 현대모비스는 2001년 3조원(약 23억달러)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면서 본격적인 성장곡선을 그리게 된다. 이어 2002년 4조원, 2003년 5조3,000억원, 2004년 6조4,000억원, 2005년 7조5,000억원 등 매년 33.9%의 놀라운 매출신장을 기록했다. 이는 델파이나 보쉬, 비스티온, 덴소 등 세계적 자동차 부품회사의 평균성장률(4.7%)보다 7배 이상 높은 수치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지난해 327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면서 연 평균 성장률 12%를 기록한 보쉬나 덴소(11.9%)를 제외하면 세계 유수의 선진 부품업체들의 성장률이 10%에도 못 미친다”며 “현대모비스의 성장속도를 세계 부품업계에서도 ‘경이적인 기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는 이를 바탕으로 ‘2010년까지 글로벌 톱10’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심찬 중장기 목표를 세웠다. 한규환 부회장은 “이를 위해 해외 생산기지와 물류거점 확대, 고부가치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 강화, AS부품 사업 확대, 글로벌 인재 육성 등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 부품 모듈화 승부수로 글로벌업체 도약 성공
주위 우려불구 발빠르게 도입…기술제휴·해외공장 건설 박차
中·美·印이어 추가 진출 모색
현대모비스가 세계적인 자동차부품업체로 도약한 결정적인 계기는 '모듈화'라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회사측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부품시스템 전체의 개선을 이뤄야"한다는 고민에 빠졌고, 과거 생소하던 모듈화 개념을 국내에 발 빠르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가 모듈사업 진출을 본격 모색한 것은 현대정공 시절이던 지난 1998년. 당시 기획실에서 섀시모듈, 운전석 모듈을 생산해 보자는 보고서가 제출됐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이것 저것 다양한 사업을 하던 현대정공이 무슨 기술이 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현대차 역시 부정적 입장이었다. 현대정공은 그러나 모듈의 첫 단계인 서비어셈블리(다른 부품회사가 만든 제품을 조립하는 것)부터 시작해 기술력을 높여가겠다고 주위를 설득했다. 이어 1999년 말에는 울산공장에서 트라제와 아반떼에 장착할 섀시모듈을 첫 생산했다. 또한 세계적인 운전석 모듈회사인 텍스트론사와 기술제류를 맺고 비슷한 시기에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생산되는 스포티지, 카니발, 스펙트라, 엔터프라이즈 등의 차종에 운전석 모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갈수록 기술력을 높여가자 주위의 불안한 시선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현대모비스는 해외로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함께 세계시장의 범위가 확대되고, 품질을 인정 받기 시작한 현대ㆍ기아차의 해외판매가 급증하면서 해외 완성차 생산거점에서의 모듈화 대응력이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현지 소비자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모듈부품을 적기에 생산ㆍ공급하는 것이 곧바로 완성차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서영종 현대모비스 모듈사업본부장(부사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 뒤 "이에 따라 현대ㆍ기아차와 동반 진출하는 방식을 통해 해외 생산기지 구축에 본격 나섰다"고 말했다. 그 첫 테이프는 중국시장에서 끊었다 2002년 12월 중국 장쑤지역에 모듈공장을 준공해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이어 다음에 3월에는 미국 앨라배마 지역에 모듈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첫 삽을 떴고, 2005년부터 현대차 미국공장에서 생산하는 NF쏘나타와 신형 싼타페 차종에 장착할 운전적 및 섀시모듈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2003년 11월, 베이징현대차에 모듈을 공급하기 위해 연산 30만대 규모의 공장을 추가로 지었고 2004년 4월에는 같은 지역에 연산 20만대 규모의 변속기 공장도 준공했다. 현대모비스는 앞으로도 중국 현지에 신공장 건설을 통해 2008년까지 모듈생산 능력을 100만대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장쑤 모듈공장 부근에 제2공장을 준공해 연 40만대 규모로 생산능력을 올리는 한편 베이징 모듈공장도 생산라인 증설을 통해 60만대까지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는 중국과 미국 외에도 해외 주요 지역에 모듈공장을 지속적으로 설립해 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올해 말에 슬로바키아와 인도지역에 연산 30만대 규모의 첨단 모듈공장을 완공하는데 이어 내년부터 추가로 진출할 지역을 적극 물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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