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은행 A씨를 잘 부탁하신다고요? 그런데 말씀하신 내용은 차라리 인사 담당자에게 전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이백순 신한은행장은 올해 한 직원의 인사와 관련해 외부에서 청탁 전화를 받았다. 이 행장은 인사 민원이 오히려 해당 직원에게 득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내비치며 청탁 철회를 에둘러서 권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통화를 마친 후 이 행장은 인사담당자에게 이러한 민원이 들어왔는데 '적절히 인사 처리'할 것을 명했다. 얼마 후 해당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인사 청탁은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며 청탁 무마를 요청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블랙코미디와 같은 이런 사례는 사실 신한은행의 역대 최고경영자(CEO)와 인사담당 임원들로부터 종종 듣게 되는 해프닝이다. 신한금융지주의 신상훈 사장이나 위성호 부사장도 과거 신한은행에서 각각 은행장ㆍHR팀장 등을 맡았던 시절 인사청탁자들에 대해 호된 문책성 인사를 단행해 일벌백계로 세웠던 사례가 있다.
이 은행 관계자는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은 초창기의 신한은행 임원 시절에 당시 군부정권 실력자로부터 인사청탁이 들어오자 이희건 명예회장과 상의해 '경영인이 사내 인사조차 마음대로 못한다면 어떻게 기업을 경영하느냐. 차라리 은행업 면허를 반납하겠다'고 배수진을 쳐 인사청탁을 막기도 했다"며 "독립적이고 투명한 인사원칙은 기업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철학을 전임직원들이 명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의 경영 방식 역시 투명한 인사원칙의 교과서로 꼽힌다. 정 사장은 지난 2003년 취임 직후 '큐브(CUBE)'라는 사내 전자결제시스템을 도입, CEO가 임원이나 간부는 물론이고 말단 사원의 업무활동까지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말단 사원이 기안을 이 큐브에 올리면 마치 트위터나 블로그에 댓글이 달리듯 정 사장이 직접 의견을 달아주기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이 빨리질 뿐 아니라 CEO가 직접 각 직원의 업무내역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어 공정한 인사 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 정 사장은 또한 고객 정보 등을 악용한 임직원에 대해서는 엄격한 문책을 하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수년 전 고객 정보를 악용했던 모 부서에 대해 폐쇄조치를 내린 것은 물론 부원 전원을 문책하고 일부 관계자를 형사고발하기도 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어윤대 KB금융 신임 회장은 신한금융의 안정된 지배구조를 거론하며 벤치마켕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는데 사실 안정된 지배구조는 투명하고 엄격한 인사원칙이 바탕이 돼야 가능한 것"이라며 "어 회장이 앞으로 조직개편을 할 때에는 줄 세우기 논란을 사지 않도록 신한은행이나 현대카드와 같은 투명 인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