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졸속 관치금융 폐해 보여준 신재형저축 실패

18년 만에 부활한 재형저축의 인기가 시들자 금융당국의 독려로 은행권이 내놓은 신 재형저축이 맥을 못 추고 있다. 시중은행이 지난달 29일부터 일제히 판매에 돌입했으나 1주일 동안의 가입실적은 고작 1,500계좌에 불과하다. 기존 재형저축이 지난 3월6일 출시 첫날에만도 28만계좌가 개설된 데 비한다면 참담한 흥행실패다.

익히 예상됐던 일이다. 이자율이 3.5%에 불과한데도 7년씩 자금을 묶어둬야만 세제혜택을 받으니 소비자의 관심을 끌 턱이 없었던 게다. 은행은 은행대로 불만이다. 지금과 같은 저금리 기조에서 7년 장기로 고정금리를 지급한다면 역마진이 우려된다는 게 은행권의 하소연이다. 소비자와 은행 모두 불만인 상품을 구태여 왜 만들었는지 근본적인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팔을 비틀어 주먹구구식으로 급조한 탓이 크다. 금융당국의 압력에 떠밀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개발한 상품이다 보니 경쟁력은 고사하고 자리조차 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자칫하다가는 행정지도에 의한 담합 시비에 휩쓸릴 수도 있다.

금융당국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양한 금융상품을 내놓아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역마진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출혈 상품을 출시하라는 강권은 곤란하다. 은행권의 부실이 누적되면 결국 다른 형태로 보전을 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익히 경험해왔다. 지난해까지 각종 수수료를 인하하라고 압박하던 금융당국이 이제 와선 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도로 올리라고 주문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온수와 냉수를 교대로 트는 샤워실의 바보와 금융당국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신 재형저축의 실패는 관치금융의 폐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행여나 판매실적을 독려하기 위해 또 다른 관치의 완력을 휘두를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소비자가 외면하는데 재산형성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계속 달아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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