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여년 넘게 논란만 거듭해온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편작업을 이번에는 이뤄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개편을 추진해 이번이 벌써 4수(四修)째다.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그 결과를 가지고 오는 30일 여는 정책토론회가 그 서막이다.
개편안의 골자는 기금운용정책을 심의·의결하는 복지부 장관 산하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기금을 실제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공사(公社)로 독립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투자수익률을 높여 보험료 인상 부담을 덜겠다는 게 핵심 명분이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서 3번의 개편법안 좌초=일단 복지부안은 노무현·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개편안, 국회에 계류 중인 여야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에서 제기됐던 문제점을 보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국민연금 제도·보험료·급여·기금 등에 대한 사항을 심의하는 국민연금심의위원회는 위원장이 차관에서 장관으로 높아지고 가입자, 사용자 대표 등이 참여하는 최고 심의·의결기구(가칭 국민연금정책위원회)로 격상된다. 심의위의 하위기능을 수행하지만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기금운용위는 가입자·사용자단체 등이 추천한 민간전문가 위주로 개선하되 기재부·복지부 차관이 참여해 기금운용과 지급에 대해 정부가 최종 책임성을 담보하게 된다.
이처럼 복지부안은 가입자단체 등이 지적해온 가입자 대표성과 정부의 책임성을 상당 부분 보완해 실현 가능성을 그만큼 높였다. 운용위 산하에는 투자정책, 주주권 행사, 성과평가보상, 감사 및 행정 등 5~6개의 전문영역별 위원회를 두고 복지부의 국민연금재정과가 사무국 형태로 확대개편된다. 연간 4~6차례 열리는 회의도 월 두 차례가량 열려 사실상 상설위원회로 탈바꿈하지만 상임위원을 둘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기금공사 사장은 최고투자전문가(CIO) 역할을 겸하지만 기금위원에서 배제된다. 공사 사장이 위원을 겸임하면 정책결정기구와 집행기구 사이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노동계·경총 등 "기금운용위 직접 참여가 최선"=하지만 박근혜 정부판 개편작업이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앞서 노무현·이명박 정부가 서로 다른 개편안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세 차례 국회에 제출했지만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가입자 대표, 특히 근로자단체 대표로 기금운용위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민주노총 등은 벌써부터 전문가 위원 추천권만 주는 복지부안에 반발하고 있다. 운용위원으로 참여해온 한국노총의 이정식 사무처장은 "연금정책위는 물론 기금운용위에도 기금의 주인인 가입자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직접 참여해 연금제도 및 기금운용 정책 결정 과정에 가입자들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입자단체 중 사용자 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경총과 전경련도 기금운용위 직접 참여가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차선책으로 기금운용위원은 추천권만 행사하고 연금정책위에 직접 참여하는 복지부안 대해서도 조건부 찬성 의견을 보였다. 경총 관계자는 "가입자단체가 기금운용위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기금운용공사의 이사회에 사외이사 등 비상임 당연직 이사로 참여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가입자단체는 지금도 국민연금공단의 이사회에 당연직 비상임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정부가 기금운용체계 개편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야당의 반대도 넘어서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기금운용본부 공사화에 반대하고 있다. 김성주 의원이 제출한 국민연금법 개정안도 기금운용본부를 지금처럼 국민연금공단에 두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책임자를 상임이사(1명)에서 부이사장 및 상임이사 2명으로 격상하는 내용이다. 민간전문가 위주의 기금운용위 운영에 대해서도 기금의 장기 재정안정이 훼손될 수 있으므로 가입자 대표 중심의 합의 구조를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올해 전주로 이전하는데 기금운용본부가 기금운용공사로 독립할 경우 이 구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도 야당이 공사화에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다.
복지부안이 정부의 공식 안으로 국회에 제출되려면 우선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의 견제도 넘어서야 한다. 기재부는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부터 국민연금기금을 관리하다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로 복지부에 관리권한을 넘겨줘 그동안 관리권 회수에 강한 집착을 보여왔다. 경기활성화와 증시 부양의 불쏘시개로 활용할 수 있는데다 향후 연금 지급을 위해 본격적인 자산처분이 이뤄질 경우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임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