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제1당인 신민당이 연정구성에 실패한 데 이어 조각권을 넘겨받은 제2당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연정 구성도 난항을 겪으면서 그리스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리자가 이미 다음달 재선거 준비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등 지난 6일 총선 이후 그리스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신민당에 이어 시리자의 연정구성도 실패로 끝날 경우 오는 6월17일에 그리스 재선거가 실시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지난 6일 52석의 의석을 확보한 시리자가 연정을 구성하려면 100석에 가까운 의석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지만 정당 간 견해 차이가 워낙 커 법정 시한인 사흘 내 연정을 구성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시리자가 실패하면 조각권은 신민당의 연립 파트너였던 제3당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으로 넘어가지만 이 경우 사실상 재선거가 불가피해지면서 그리스 사회는 한 달여 동안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재선거에서는 그리스 정권은 시리자를 중심으로 한 반긴축 연정에 넘어갈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반(反)긴축재정을 내건 시리자가 연정구성에 성공한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앞서 8일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과 면담 후 "신민당과 사회당 양당은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받아들여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한 약속을 철회해야 한다"며 즉각적인 긴축재정 철회를 주장했다.
재선거 여부와 상관없이 그리스가 긴축재정 약속을 파기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EU 내에서도 그리스의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가 눈앞의 현실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리스는 10일 부채상환을 위한 52억유로 구제금융 지원 받을 예정이지만 긴축재정을 무효화할 경우 이후의 자금 지원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현재 그리스 정부가 보유한 자금력만으로는 8월 이후 돌아오는 부채상환을 감당할 길이 없다.
8일 외르크 아스무센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기를 원한다면 합의한 긴축을 이행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CB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공식 언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