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땅값 해도 너무한다] <상> '투기장' 변한 재개발현장을 가다

기획부동산 들고 나며 지분쪼개기 한창
소문만 돌면 몰려와 3년새 차익 수십억 챙기기도
기본계획조차 수립 안된곳도 '추진위' 난립
정작 원주민은 마땅히 이사갈곳 없어 외지로


“사모님! (전세끼고) 실투자금 2억5,000만원이면 지금 이 일대에서 이런 물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요. 고민하지 말고 계약하세요.” 27일 오후 4차뉴타운 후보지 중에 한 곳으로 거론되던 중구 신당동의 한 중개업소에서는 중개업자와 손님간에 가격 흥정이 한창이었다. 이미 인근 왕십리뉴타운에 투자해 2배가 넘는 시세차익을 거뒀다는 손님 김모씨(47세ㆍ주부)는 “재개발 지역 중 저평가 됐거나 사업이 초기 단계에 해당되는 곳을 선점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꽤 짭짤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흔히들 재개발 투자를 ‘머니 게임’에 비유하곤 한다. 재개발 소문이 돌기만하면 기획부동산 및 돈이 있는 외지 투기꾼들이 몰려와 차익을 거두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 정작 내집 마련의 꿈을 안은 실수요자들은 거듭되는 ‘손바뀜’ 속에 가격이 잔뜩 부풀어오른 지분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매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일대에서 20여년간 중개업소를 운영했다는 신일부동산의 한 관계자는 “신당6동(7구역) 일대 노후 다세대 소형 지분 가격이 3~4년 전만해도 3.3㎡당 500만원 수준이었다”며 “최근 몇 년 사이 기획부동산이 15곳 정도 들고 나면서 지분가격만 3.3㎡당 최고 3,000만원까지 올려 놓았다”고 말했다. 사정은 다른 4차 뉴타운 후보지도 마찬가지. 뚝섬 서울숲 개발 및 지하철 분당선 개통 호재 등으로 하루아침에 ‘금싸라기 땅’으로 변한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서는 기획부동산을 중심으로 지분쪼개기가 한창이다. 뚝섬공인중개사 신현욱 대표는 “한 업자의 경우 지난 2005년 500㎡형 부지를 3.3㎡당 1,100만원에 매입해 19가구 규모의 다세대주택을 지어 가구당 3억5,000만원에 분양했다”며 “이 업자는 세전 이익이 18억~20억원 쯤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2003년부터 집값 상승에 편승해 지분쪼개기 방식으로 소위 ‘한 몫’을 챙기고 나간 업자들이 꽤 된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 성수동 일대 재개발 지분 가격은 3.3㎡당 500만~1,000만원에서 최고 5,000만~6,000만원 선까지 치솟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뉴타운이나 재개발 기본계획 조차 수립되지 않은 일부 지역에서는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2~3개씩 난립해 집값 불안을 부채질하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 상동의 한 주택가에서는 ‘상동 역세권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버젓이 간판을 달고 있지만 실제 활동은 전무한 상태이다. 시관계자 역시 “해당지역은 재개발 기본계획이 수립돼있지 않고, 재개발 사업 또한 검토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인근에 C공인중개사의 한 관계자는 “아파트 가격 담합하듯이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재개발 추진위원회 간판만 달아놓고 바람몰이를 하며 집값을 띄우는 사례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민주거안정 및 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투기의 장으로 변질된 뉴타운 및 재개발 사업지에서 정작 원주민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문제점이다. 성수동 좋은집공인중개사 천세규 대표는 “원주민들이 차익실현을 하고 싶어도 외지 투기세력이 이 일대 지분값만 잔뜩 올려놓는 바람에 마땅히 이사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원주민들은 보유세 부담만 늘어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당동 J공인중개사의 한 관계자는 “재개발 방식으로 99년에 완공된 신당동 삼성래미안 1,434가구 중 원주민 재정착률은 5~10% 정도밖에 안 된다”며 “신당동 곳곳이 재개발 된다고 해도 추가분담금을 치를 능력이 없는 원주민들은 정작 저렴한 주택을 찾아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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