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제과 "아이스크림 제 값 받기 어렵네"

슈퍼마켓 점주 반발로 정찰제 힘 못쓰자 대상 품목 확대 주춤


아이스크림 성수기를 앞두고 업계 1위 롯데제과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아이스크림 가격 정상화를 위해 야심차게 도입했던 '가격 정찰제'가 도입 1년을 맞았지만 중소 슈퍼마켓 점주들의 반발에 부딪혀 힘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제과는 올해 아이스크림 가격정찰제 품목 확대를 일단 중단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도입 취지가 분명한 만큼 기존 품목에 대한 가격 정찰제는 취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품목을 확대해 나가겠다"던 1년 전과 비교하면 사실상 후퇴로 풀이된다.

롯데제과는 지난해 4월부터 6월말까지 총 16개 품목의 가격을 기존보다 인하해 표시했다.예컨대 표시가격이 8,000원인 '티코', '셀렉션' 은 중소 슈퍼마켓에서 50% 할인해 4,000원에 판매됐지만 정찰가를 5,000원으로 책정하고, 1,000원에 표시돼 500원에 팔리던 빙빙바, 누크바 등은 정찰가를 600원으로 조정하는 식이다. 롯데제과의 정찰제 도입은 그동안 연중 내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80%까지 할인 행사가 난무해 소비자들에게 가격 불신을 심어주는 아이스크림 유통 구조를 손질해 정상화하겠다는 고심 끝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롯데제과의 가격 정책에 중소 슈퍼마켓 점주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아이스크림은 녹기 쉬운 제품 특성상 소비자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매장을 찾기 때문에 대형마트보다 동네 슈퍼마켓 유통물량이 더 많은 유일무이한 품목이다. 아이스크림 전체 유통의 70% 이상을 중소 슈퍼가 차지할 정도다.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설 자리가 줄어든 동네 슈퍼들이 제품 특성을 앞세워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반값 할인' 문구를 내걸고 미끼 상품으로 활용하면서 이 같은 구조가 고착화됐다.

동네 슈퍼 점주들로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품목에 정찰제를 도입하는 것이 반가울 리 없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슈퍼 점주는 "가격 정찰제 때문에 매출ㆍ이익이 줄었다"며 "가격 정찰제가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비자들이 아이스크림 가격 할인에 익숙해져 표시 가격대로 판매하면 구매를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 매출이 줄어든데다 가격 정찰제 도입을 계기로 제조업체의 납품가도 인상돼 이익이 줄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값 아이스크림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소비자들대로 "대폭 할인을 안 해주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려니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고 토로한다.

정찰제가 롯데 제품 구매에 악영향을 미쳤는지 실제로 지난해 롯데제과의 빙과사업 매출은 4,020억원으로 2011년의 4,050억원보다 소폭 줄어들었다. 지난해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롯데제과 매출이 제자리걸음을 한 이유는 정찰제에 대한 슈퍼마켓 점주 반발과 소비자 저항이 거셌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롯데제과가 도입 첫해와 달리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이고 빙그레ㆍ해태제과 등 경쟁사도 적극 동참하지 않는데다 슈퍼마켓 등 유통채널에서 여전히 아이스크림을 50% 이상 할인 판매하는 등 정찰제가 유명무실해졌다"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반값 아이스크림도 따지고 보면 골목상권과의 갈등 문제"라며"슈퍼 점주들도 아이스크림 유통에 문제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생존권 차원에서 정찰제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유통물류정책학회 회장)는 "아이스크림 유통 구조를 개선하려면 중소 슈퍼 점주들의 적정 이익을 보장하는 한편 제품 차별화를 위한 제조업체들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오 교수는 "중소 점주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제조업체들이 공급가격을 낮추기 위한 경쟁을 하면서 연구개발(R&D)을 통한 차별화된 제품 및 마케팅 활동으로 제품 가치를 높여야 아이스크림이 미끼 상품으로 활용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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