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10월 29일] 중국에서 추락하는 한국의 위상

중국 베이징(北京)은 계절이 겨울로 바뀌는 10월 말이면 늘 바람이 많고 쌀쌀하지만 요즘 이 곳 한국인들은 유난히 춥다. 원화 가치의 급락과 국가 위상의 추락이 심리를 잔뜩 위축시키고 있다. 중국의 한국 교민들은 ‘환율공포’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최근 급격한 원화 가치 하락으로 교육비와 주택임대료ㆍ식품가격 등 중국 내 대부분 물가가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올해 초 대비 두 배가량 올랐다. 베이징에 부인과 한 자녀를 두고 홀로 귀국했던 전직 대기업 주재원 K씨는 “서울에서 버는 수입을 모두 털어도 돈이 모자라 가족들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K씨의 가족처럼 불가피하게 중국을 떠나는 한국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인 밀집 거주지역인 베이징 왕징(望京)의 거리는 한산해졌고 산둥성의 한국기업 밀집지역인 칭다오(靑島)의 경우 교민의 수가 절반 이상 줄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인의 위상 추락은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주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시아ㆍ유럽정상회의(ASEM) 기간 중국 언론들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와 중ㆍ일관계에 대해 크게 보도하고 해설까지 곁들여 소개한 반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특별보도는 드물었고 한ㆍ중관계에 대한 조명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 기업들은 ‘11월 위기설’로 흉흉하다. 중국 금융당국이 지난 9월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유로 외자은행에 대한 은행 간 대출을 전격 동결했고 이어 한국계 은행들은 한국 기업들에 대한 신규대출을 중지했는데 이 조치가 기존대출의 만기가 돌아오기 시작하는 오는 11월 중순까지 지속되면 한국 업체들의 대규모 도산이 불가피하다는 소문이다. 한국계 은행의 한 직원은 “요즘 매일같이 베이징 금융가를 쏘다니며 중국계 은행들에 대출을 요청하고 있지만 아무리 굽신거려도 소용이 없다”며 요지부동의 상황을 전했다. 슬프지만 중국에서 한국인의 위상은 이렇게 동반추락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답답하다. 한국 경제팀의 정책실패로 우리 경제가 너무 급격하게 하강했기 때문인지, 새 정부 들어 한ㆍ중관계에 너무 급격한 변화가 생겨 서로 간에 오해가 빚어졌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우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너무나 큰 외생변수가 돌발해 우리의 위상을 강제로 끌어내리고 있기 때문인지 그 원인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대로 두더라도 앞으로 절대로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 달라진 국제환경 속에서 미래의 한ㆍ중 관계의 좌표를 어떻게 설정해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느냐는 점이다. 아울러 미국과 일본에 밀착하면서 북한을 멀리하는 외교정책을 계속 고수할 것인지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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