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홈쇼핑, 못 파는 것 많네
A 홈쇼핑에서 방송 송출을 담당하는 B 부장은 얼마 전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회사가 보험상품을 판매하려면 전체 임직원의 10분의 1이 보험판매 자격증을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B부장은 “밤잠을 설쳐 가며 공부했지만 부서에서 제일 늦게 자격증을 얻는 바람에 핀잔만 들었다”며 “보험을 직접 판매하지도 않는데 왜 자격증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대적인 규제 개혁에 나서면서 업계 전반으로 규제 철폐의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홈쇼핑업계가 불필요한 규제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과거 다른 업종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이 홈쇼핑에 그대로 적용되면서 사실상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 보험법에 따르면 홈쇼핑이 보험상품을 판매하려면 법인 명의로 보험대리점을 등록하고 전체 임직원의 10분의 1이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비롯한 보험판매 자격증을 획득해야 한다. 임직원 규모가 1,000여명에 달하는 대형 홈쇼핑업체는 100명 이상이 보험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보험상품 판매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방송 제작부서나 업무 지원부서 인력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자격증 취득에 나서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홈쇼핑에서 이유식은 팔 수 있지만 조제분유나 젖병, 젖꼭지, 우유 등의 판매가 금지된 것도 비슷한 규제 논리가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모유 수유 촉진을 위해 지난 1991년 축산물가공처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분유에 대한 광고를 원천적으로 막아놔 현행 6개 홈쇼핑 사업자는 이 같은 제품들을 팔지 못하고 있다.
분유, 젖병 등을 판매하면 모유를 수유하는 비중이 줄어들 수 있다는 억지 논리를 적용해 홈쇼핑의 분유 방송을 일종의 광고로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분유가 아닌 이유식은 대상에서 제외돼 형평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이유식과 분유의 대상이 영유아로 같은 데도 해묵은 규제 때문에 분유는 홈쇼핑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만 팔 수 있게 돼 결국 소비자들이 그 만큼 혜택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 홈쇼핑에서 수입 자동차는 판매가 가능하지만 정작 국산차는 판매할 수 없는 실정이다. 현행 법규에서는 자동차와 보험의 연관성이 높다는 이유로 자동차 판매점이 보험을 함께 팔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보험대리점으로 등록된 홈쇼핑은 국산차 판매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홈쇼핑이 국산차가 아닌 수입차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홈쇼핑을 둘러싼 불합리한 규제가 계속되면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한 국내 홈쇼핑시장의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홈쇼핑시장은 지난 1995년 신생 서비스로 등장해 9조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 등 후발주자들의 추격으로 입지를 위협받고 있다. 방송이라는 홈쇼핑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경쟁 서비스에 비해 지나치게 규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통주의 경우도 홈쇼핑에서는 판매가 금지되지만 우체국과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판매가 이뤄지는 등 유독 홈쇼핑과 관련한 규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유통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규제의 실효성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