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산업은 일반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는 다른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이를테면 원재료 납품, 여러 중간재, 최종재 제작, 유통 등의 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일반 산업 분야와는 달리 콘텐츠 산업은 크게 콘텐츠를 제작하는 단계와 소비자에게 유통시키는 단계로 단순하고 원재료 및 중간재 단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콘텐츠의 제작단계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반면 유통 단계는 콘텐츠를 소비자 내지 이용자들에게 전달하는 네트워크나 플랫폼을 구축해야 하므로 상당 규모의 자본이 필요하다. 그 결과 제작 분야의 진입장벽은 낮아서 기술경쟁력을 가진 중소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반면, 유통은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 주로 장악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이처럼 중소사업자와 대기업으로 나뉘어진 이분적 구조에는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고 필연적으로 불공정 이슈가 상존하게 돼 있다. 실제로 중소 콘텐츠사업자의 거래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고 있는 공정거래 법률자문서비스의 지난해 이용건수 114건을 살펴보자. 무려 35%에 달하는 40건이 지식재산권 관리에 대한 어려움 해소를 요청하는 부분이었다. 콘텐츠 제작에 들인 노력, 즉 저작권ㆍ퍼블리시티권ㆍ특허권ㆍ디자인권 등과 같은 지식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거래조건이 잘 반영돼 있는지 계약서 검토(25%), 그리고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대응방법(16%)을 물어왔다. 이 밖에도 법률해석이나 불법행위에 대한 대응, 세금에 관한 문의가 있었지만 가장 큰 관심은 지식재산과 이것에 대한 계약서 작성, 계약불이행의 해결방법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 제작 및 유통과정에서 분쟁에 휘말리면 많은 시간과 인력, 돈이 낭비된다. 그러므로 사전에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계약당사자들의 이해가 충분히 반영된 완성도 높은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대부분 업계 종사자들은 계약서 작성에 대해 콘텐츠 제작자와 유통사업자가 동등한 교섭력을 가질 수 없어 형식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질적으로 거래조건과 대금지급에 대해 콘텐츠 제작자는 제대로 된 의견을 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공정거래가 심화되면 제작의욕은 저하되고 콘텐츠 유통사업자의 기획제작만 늘어 궁극적으로는 이용자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해외 콘텐츠로 눈길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과 이동통신망을 기반으로 탄생한 신규 유통 비즈니스 모델은 모두 열린 생태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동통신망이 구축된 이래 다양한 모바일 비즈니스가 등장했으나 통신망의 닫힌 구조로 성장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애플의 사례는 큰 교훈이다. 그들이 내놓은 '앱스토어'라는 오픈마켓이 콘텐츠 시장에 얼마나 큰 바람을 일으켰는가. 유럽과 남미에서 부는 'K팝'바람 역시 유튜브라는 열린 유통망을 통해 이뤄졌다.
최근 글로벌시장으로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한국 드라마와 K팝, 게임 콘텐츠 등은 우리 콘텐츠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산업구조상 우월한 위치에 있는 콘텐츠 유통사업자들이 제작자들의 영역을 인정하고 공정과 상생이라는 화두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