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차이나타운(사진)'에서 쓸모없는 자는 버려진다. '쓸모'란 돈으로 환산되는데, 이를테면 콩팥과 각막 같은 장기의 합보다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인간은 처리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감정과 눈물 따위는 돈이 안 된다.
생모에게조차 필요없는 아이였기에, 지하철 코인로커에 버려졌던 일영(김고은 분)은 이곳의 생존법칙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는 표정을 지우고 감정을 죽인 채 자신이 쓸모있는 존재라는 것을 묵묵히 입증해가며 삶을 연장해 왔다. 지하철 앵벌이부터 사채 수금까지. '엄마(김혜수 분)'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영이었기에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지 않아도 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 줄 존재를 누구보다 기다리지 않았을까. 예컨대 '가족' 같은 것들. 지능 낮은 동생 홍주(조현철 분)와 자매 같은 친구 쏭(이수경 분)을 보살피는 일영의 모습에서 그 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던 석현(박보겸 분)에 끌리는 이유 역시. 하지만 '쓸모'로 밖에 사람을 판단하지 못하던 차이나타운의 관성이 그를 쉽게 놓아줄 리가 없다. 그렇게 이들의 비극은 시작된다.
통상 누아르 장르에서 장식물처럼 여겨지던 여성을 전면 배치함으로써 평범할 법했던 이야기는 특별한 색을 띄게 됐다. 가족과 모성의 신화는 '엄마'라는 인물을 통해 기이한 방식으로 표출됐고, 그렇기에 일영의 절망과 슬픔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설정이 다소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어디 '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곳이 이곳 차이나타운뿐일까.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쓸모를 입증하기를 강요받는 현대인들이라면 어떤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다. 2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