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화가 있다. 청와대에서 당정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 전날 대통령이 우연히 회의장을 들르게 됐다. 잘 정돈된 회의장을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보던 대통령은 한 지점에 눈을 고정하더니 표정이 달라졌다.대통령이 앉을 의자와 나란히 또 하나의 의자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누구의 의자냐고 물었다. 당 대표의 의자라고 한 측근이 말했다. 순간 대통령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의자 빼!』하고는 회의장을 나갔다.
이미 후계자 위치가 확보돼 있던 당 대표라 아래 사람들은 위상도 전파할 겸 「민주적 모습」을 연출한다는 계산으로 두 개의 의자를 나란히 놓았다가 혼쭐난 것이다. 의전상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일지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권력의 속성과 본질이 숨어 있다.
대칭적 권위와 위치를 용납하려 들지 않는 게 바로 절대권력이다. 격식상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그 상징성 때문에 절대권력은 대칭적 위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부장적 유교문화와 권위주의적 정치생산 양식이 전통으로 돼온 한국에서는 그것이 대통령학의 원론처럼 받아들여진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강단 정치학과 언론이 권위주의를 비판해왔지만 실제 권력사회에서는 권위주의는 한국적 리더십으로 통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권위와 권력의 절대성은 조직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동력이 돼 생산물을 만들어낸다는 원리를 박정희 시대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박정희 시대의 동력은 「긴장의 생산성」에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하지만 그 생산력은 다른 한편에 있는 수많은 반대자와 비판자의 의자를 제거하거나 제거하겠다는 위협을 수단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긴장의 생산성」은 자체 모순에 의해 임계점을 넘어서게 됐고 10·26의 비극을 불러왔다. 이후 20년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생산양식은 외관상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의자를 밖으로 낼 수밖에 없었던 당 대표는 뒷날 대통령이 됐고 정권도 네차례나 바뀌었다. 그중에는 그의 정치적 반대자가 두 사람이나 있었고 후에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긴장의 생산학이 본질적으로 변했다는 확인은 아직 없다. IMF사태 이후의 전 국가적 긴장과 그에 따른 생산성을 보면 아직 유효한 면이 있다. 그러나 권력의 대칭성을 인정하지 않고 「의자를 빼 버리겠다」는 위협으로 만들어 내는 인위적 긴장은 또 다른 혼돈과 비극을 자라게 하는 파괴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국가와 사회적 진장감은 제도와 시스템으로 만들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