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훔쳐보기]-정치인의 눈물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사과하며 눈물을 흘렸다. 순간 방송 카메라도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박 대통령의 담화 직후 새누리당이 국회 출입기자 20명을 대상으로 긴급 조사한 결과, 14명이 “감성이 느껴진다”고 답했다. 담화 시점도 늦고 만족도도 10점 만점에 7.35로 나왔지만 박 대통령의 눈물에 대한 기억은 강하게 남는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눈물을 계기로 새삼스레 정치인의 감성적인 눈물이 ‘진정인가’라는 논쟁이 제기된다. 눈물 그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로 읽히며 크든 작든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학생과 교사, 서비스직 일부 승무원 등 ‘세월호 영웅’들을 거론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추켜 세울 때 눈물을 흘렸다. 정가에서는 노인층과 장년층, 보수층의 동정여론을 끌어내고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비판적인 ??은층과 주부들의 마음을 일부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조동원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은 이날 기자와 만나 “대통령의 담화 내내 진정성을 느꼈다”고 강조했고, 함진규 대변인도 “솔직하게 진정성이 담겼다”고 평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지원 의원은 트위터에 “눈물만 있고 책임은 없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정치인들은 사과를 하거나 가슴에 맺힌 게 터져 나올 때 눈물을 보인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인 정몽준 의원은 지난 12일 경선 승리 뒤 수락연설에서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세월호 참사’ 직후 막내아들이 “국민정서가 미개하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가 거센 비판을 받은 것에 대해 “철없는 짓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너그럽게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정 후보의 눈물 사진이 화제가 됐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갑자기 폭발한 것”이라는 의견과 “본선을 겨냥한 이벤트 아니냐”는 지적이 동시에 나왔다. 여하튼 정 후보에 대한 비판여론이 조금 사그라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정치인의 눈물은 선거 판세를 흔드는 경우가 많았다.
2002년 대선과정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TV광고는 당시 차가운 이미지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대비되며 유권자의 많은 공감을 끌어냈다. 박근혜 대통령도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대표로서 당시 노 대통령 탄핵 역풍에 맞서 정당 대표 TV연설에서 눈물을 흘리며 121명을 당선시켰다.
지난 8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강성 이미지의 박영선 후보가 눈물을 보이며 공감을 끌어냈다. 그는 진도 팽목항에서 본 ‘한번만 안아보자. 보고 싶다 아가야’라는 글을 소개하면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앞서 올 1월 1일 새벽 여권이 밀어붙인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대해 재벌특혜법이라고 버티며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의 추진을 조건으로 법사위원장 의사봉을 간사에 넘길 때도 당내 의총에서 눈물을 보였다.
다만 2012년 18대 대선에서 야당의 문재인 의원이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난 뒤 “노 전 대통령이 생각나서”라며 눈물을 흘렸으나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안철수 당시 무소속 후보도 그해 11월 대선 후보를 문 후보에게 양보하면서 눈물을 보여 야권 표 결집에 악영향을 미쳤다.
전·현직 대통령들도 슬플 때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휠체어에 앉아 대성통곡하며 국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2010년 천안함 희생자 영결식장에서 추모연설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