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쟁력 강화·사회구조 효률 높여/“정보화가 좋다” 인식·동참 이끌어내야「정보화에 유리한 구조는 고비용사회.」
정보통신부·청와대 등 정보화를 이끌어가는 우리나라의 정책리더들은 대부분 이런 감각을 갖고 있다. 물가·금리·땅값·물류비 등의 비용이 많이 드는 사회구조일수록 그에 비례하여 정보화를 통한 효과는 커진다는 것이다.
하나의 시나리오가 있다. 의류를 만드는 제조업체가 디자인에서 재료구매, 제조, 판매 등 제품순환의 전과정에 CALS(광속상거래)시스템을 구축한다. 또 생산된 제품을 유통시키는 과정에 통합물류정보시스템이 구축돼 있고, 유통업체는 백화점 등에 별도의 매장을 차리지 않고 인터넷 홈쇼핑을 통해 제품을 판매한다. 이에 따라 각각의 요소비용은 최소화된다.
주목할만한 것은 예컨대 「매장 임대료가 비싸서 장사를 못하겠다」고 느끼는 업주일수록 인터넷쇼핑을 도입하려는 경향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또 임대료가 비쌀수록 그만큼 인터넷쇼핑으로 업태를 바꿀 필요성과 그 효과가 커진다. 제조분야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의류업체들끼리 정보화 경쟁이 가속화될 경우, 또 유통업체들간에도 경쟁이 붙어 백화점에 매장을 차려놓고 물건을 전시하는 형태가 점차 사라질 경우 「의류」라는 하나의 품목을 둘러싼 생산·유통비용은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마련이다. 공장·사무실·매장 등 토지와 공간의 수요가 줄어들고, 그 연쇄효과로 지가도 하락한다. 기업들은 종전보다 더욱 낮은 비용으로 더욱 품질좋은 제품을 만들어 저렴하게 팔 수 있게 된다.
시나리오의 결론은 이를 통해 물가·지가·금리·물류비 등 고비용을 한꺼번에 잡으면서 기업경쟁력과 사회구조의 효율을 올린다는 것이다. 이는 개연성이 높거니와 「정보화」라는 큰흐름에서 보면 바람직한 모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기업과 국민들이 고비용구조에 시달리는 것은 단기적인 현실이고, 정보화로 고비용을 잡는 것은 장기적인 처방이다.
한해 물류비용만 국내총생산의 15.7%에 달하는 48조원, 한 기업의 물류비가 매출액의 17%, 화물유통의 비효율로 인한 손실만 한해 6조원, 교통혼잡비용 한해 10조5천억원, 한해 17조5천억원에 달하는 사교육비, 10년간 4.2배의 임금상승 등. 이같은 고비용의 현실과 처방간에는 쉽게 뛰어넘기 힘든 심연과도 같은 간극이 도사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기업이 고비용이라는 현실을 단기처방으로 떼우려는 유혹을 극복하고, 정보화와 같은 본질에 접근하려는 사회적 합의와 마인드를 갖추는 일입니다.』 정통부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그의 말은 「갖가지 비용에 시달리고 있는데 무슨 정보화냐」와 같은 의식이 현재 사회일반의 마인드라는 것, 그것이 정보화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생활용품을 만드는 P사의 사례.
전국에 4곳의 공장과 20여개의 지사를 갖고 있는 P사는 최근 공장과 지사, 거래처를 연결함으로써 제품물류에 필요한 정보를 리얼타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물류정보망을 구축했다.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고비용에 시달리고 있는 P사로선 물류정보망 구축투자가 선구적인 결단이었다. 그러나 기대만큼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사가 개설되지 않은 지역이나 새로운 거래선과 영업할 경우 물류망은 전혀 쓸모 없었기 때문이다. 이쪽은 첨단 정보통신망을 갖추고 있는데 상대방들은 주문이나 배송, 결재에 여전히 우편이나 팩스, 심지어 인편에 의존하고 있는데서 나타난 문제였다.
P사의 사례는 정부가, 일부기업이 고비용을 정보화로 타파해 보겠다고 해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정부는 정보화촉진기본계획, 정보화전략 선언에서 뛰는 비용을 잡고 효율을 높이는 것이 최대의 목표라고 밝혔다. 아울러 산업정보화촉진, 종합물류정보시스템 구축 등 사회간접자본의 효율향상을 위한 추진과제도 제시했다.
그러나 그 성패의 관건은 역시 사회 각 부문에서 「정보화가 좋다」는 인식과 동참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물류마인드 없는 기업에는 물류정보망이 컴맹에 펜티엄PC 사주는 격이며, 정보화마인드가 따르지 않는 고속도로·항만 건설은 그 자체가 고비용의 주범이 될 수 있다.<이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