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내 개헌론이 정파적 대립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정치게임으로 변질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헌에 대한 순수한 찬반논란의 수준을 넘어 개헌론을 고리로 한 당 운영의 주도권 싸움 또는 세력경쟁으로 비화할 움직임이다.
이는 내년 총선과 대선 등 양대 선거를 앞두고 총선 공천권 지분과 당내 대선후보 경선 우위 확보를 위한 당내 계파 또는 대권주자 간 치열한 힘겨루기의 신호탄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 개헌론은 지난 23일 당정청 만찬회동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개헌,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이 전해지며 정치권에 파장을 낳고 있다.
친이명박계의 구심점으로 개헌론에 줄곧 군불을 떼온 이재오 특임장관이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파결속을 주문한 데 이어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이 나오자 이 대통령의 개헌론에 힘을 실은 것 아니냐며 '이심(李心)' 논란이 당내에서 제기됐다.
특히 친박근혜계는 개헌론이 대권주자 경쟁에서 독주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일 수 있다고 경계하며 강력 대응할 태세다.
중도파와 당내 나머지 인사들도 소수의 친이 주류끼리 주도하는 개헌론이 '친이계 이탈 방지용'아니냐며 의혹 짙은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한나라당이 다음달 8일부터 사흘간 개헌 끝장토론을 예정하고 있지만 갈등만 일으키고 끝나리란 관측에 점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이유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25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당정청 회동결과를 설명하며 "대통령이 (회동자리에서) 평소 (개헌에 대해) 해오던 생각을 가볍게 언급했다"고 밝혔다. 전날 기자회견에서 "(개헌논의는) 일절 없었다. 그건 거짓말 아니다"라고 했던 발언을 번복한 것이다.
안상수 대표도 대통령의 개헌 논의에 대해 당 최고위원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한 최고위원은 "개헌처럼 중요한 정치적 의제를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면 그만이냐"면서"지도부 측에 당 운영을 제대로 하라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친이계는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상 개헌 지시로 받아들였다. 당청회동에 참석한 한 친이계 인사는 "대통령의 개헌 지시로 받아들인다"고 말했고 친이계 최대모임 '함께 내일로'대표 안경률 의원은 "모임 대부분의 의원들이 개헌에 찬성한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하는 것을 돕겠다"고 밝혔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이 장관이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니 뭔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대통령 의중까지 나온 마당이어서 의총에 가서 자리는 잡고 앉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친이 주류를 제외한 정치권의 나머지는 개헌 논의에 반대한다. 중도인 홍준표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세종시 수정안도 관철하지 못한 정부ㆍ여당인데 그보다 10배는 더 무거운 주제인 개헌을 할 수 있겠나"라면서 "현 정부ㆍ여당은 개헌을 할 동력과 능력을 잃었다"고 질타했다.
이 같은 생각에 공감하는 친박계나 당내 중도파는 개헌 논의 자체를 성공시키보다는 이를 통해 차기 총선에서 친이계를 결집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반면 친이계 결집조차 실패하리라는 쓴소리도 나온다. 홍 최고위원은 "개헌 논의를 통해 친이를 결집하고 레임덕을 방지한다는 생각은 난센스다"면서 "지금 개헌을 논의하면 정부의 추동력은 더 떨어지고 당내 분란은 가속화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