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공복

증권부 禹源河차장얼마전 재경부에 근무하는 한 관리는 기자를 만나 『정말 이제는 내가 갈길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시에 합격해 외견상으로 화려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지금 와서 옆을 돌아보니 경제적으로도 다른 친구들에게 뒤져있고 사회적으로는 공무원을 보는 눈이 곱지 않아 괴롭다는 토로이다. 여기에 환란이후 죽도록 고생을 했고 지금도 평일날 정시 퇴근은 고사하고 주말에도 가족들과 변변한 시간을 가져본 기억이 잘나지 않는 등 가정 생활도 엉망이 된 고충도 있었다. 그래서 온 젊음을 바친 공무원 생활을 중도 포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실하고 유능한 많은 공무원들이 하고 있는 고민의 전형이다. 우리는 역사상 왕조시대에서 식민통지기를 거쳐 민주주의를 수용한 길을 걸었다. 왕조시대는 관(官)이 민(民)을 통치하는 시대였고 과거에 급제한다는 것은 권력과 부를 한꺼번에 거머쥐는 출세의 유일한 통로였다. 왕조시대의 종말을 일본 군국주의 세력에 의해 맞게 된 것은 역사의 불행이었다. 그들은 식민지를 지배하는 도구로 쓰기 위해 과거제도 대신 고등고시제도를 운영했다. 소수의 귀족들에게 엄청난 특권을 주고 대신 백성을 효과적으로 통치, 착취하기 위해 러시아 황실이 운영한 노멘클라투라와 유사하다. 이렇게 선택된 사람들은 자신이 할일이 통치, 군림, 지시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부여받은 임무가 그랬다. 비극적인 것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이래 지금까지도 공무원들의 이같은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행정부 관리, 판검사, 경찰, 지방자치단체 관리 등 공무원들은 한마디로 국민들의 공복, 다시말하면 공공의 머슴이다. 주권재민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따를 경우 그렇다. 국민 개개인이 가진 권력을 위임받고 국민들의 돈으로 월급받고 일하는 심부름꾼이다. 청와대, 행정부처 등에서 일하는 공무원들 입에서 『대통령을 잘 보좌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장관을 잘 보필하겠다』라는 말을 흔히 들을수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뚜렷한 생각을 갖기보다 자신의 상사를 잘 모시는데 더 정성을 들인다는 얘기다. 머슴이 또다른 머슴을 잘 모시는데 급급하면 주인은 뭔가. 툭하면 국가장래를 담보로 이기주의에 입각한 정쟁을 벌이는 국회나 자기들 표현대로 「권력의 시녀」역할을 하고선 후안무치한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는 검찰, 일부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들의 행태를 「20세기 한국사에 남겨질 집단 도덕적 해이의 정수」라고 칭하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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