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용 투자적격] "환란 대탈출" 서막

「정크본드」탈출의 서막이 올랐다.피치 IBCA사의 국가신용등급 조정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대탈출의 서곡으로 해석된다. 지난 97년 12월 S&P, 무디스, 피치 IBCA등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들이 일제히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정크본드) 수준으로 하향조정한 지 13개월만에 IMF체제 탈출과 경기회복의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전조는 이미 여러 군데서 포착된다. 지속적인 구조개혁에 힘입어 국내 금융·환율시장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고 외환보유고도 IMF지원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특히 금융부실의 대명사로 지목되어 온 제일은행의 해외매각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면서 한국시장을 바라보는 해외투자가들의 시각이 급속도로 개선됐다. 한국에 투자해도 괜찮다는 긍정적 판정이 줄을 이었고 주식시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지난해말 신용등급을 한꺼번에 6단계나 끌어내리며 냉혹한 심판관의 모습을 보였던 3대 신용평가기관들이 언제 그랬냐는듯 우리나라를 긍정적 신용전망 대상에 올려놓았다. 3대 기관은 그러나 장기신용전망만 긍정적 평가대상에 올려놓았을 뿐 실제 신용등급을 올리는 데는 인색했다. 피치 IBCA의 신용등급 상향조정은 이같은 국제금융시장의 보수적 투자행태에 쐐기를 박는 전환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국이 더이상 정크본드 시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이 공인한 만큼 그 여파는 앞으로 각 부문에 걸쳐 급속도로 확산될 게 분명하다. ◇신용등급 조정의 배경 = 피치_IBCA는 우리나라의 가용외환보유고가 지난해말 현재 500억달러까지 늘어났고 올해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300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외환시장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을 첫번째 요인으로 꼽았다. 또 금융개혁 노력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수출경쟁력이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피치 IBCA는 그러나 우리 정부가 외환부문의 안정을 이유로 구조개혁의 속도를 늦춰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업의 부채비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구조개혁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경고메시지다. ◇효과와 전망 = 이번 신용등급 상향조정은 특히 브라질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표됐다는 점에서 색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이 우리나라의 경제능력을 다른 외환위기 국가나 개발도상국과 차별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확인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따른 효과는 투자자금 유입이라는 형태로 조만간 가시화될 전망이다. 「한국은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나라」라는 공인증명서를 발급해준 만큼 향후 주식·채권 등 포트폴리오 투자를 포함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봇물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자금을 빌릴때 적용되는 가산금리가 크게 내려가 이자부담이 그만큼 줄어드는 효과도 기대된다. ◇권고 사항= 피치 IBCA는 투자등급 상향조정이라는 선물과 함께 국내 경제주체들에 대한 따끔한 처방전도 함께 제시했다. 우선 지속적인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도한 채무를 바탕으로 외형위주의 성장을 지속해 온 기업부문과 소홀한 금융감독 아래 신용분석도 없이 마구잡이 대출을 해온 금융부문을 위기의 근원으로 지목, 이에대한 개혁작업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금융부문의 문제는 앞으로도 당분간 한국경제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이들 부문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최소 2~3년이 더 소요될 것이라는 분석을 덧붙였다. 아울러 북한의 지속적인 위협이 존재한다는 있다는 점을 지적, 한반도의 균형상태에 급박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함을 잊지 않았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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