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에 적용된 이후 법정관리로 들어가기까지 악몽의 1백일이 지나자마자 동남아 및 홍콩의 외환위기라는 외풍에 한국경제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금융시장이 붕괴직전으로 내몰리고 올 하반기부터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던 실물경기도 회복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 돼 버렸다. 세계적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사는 최근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5%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섬뜩한 전망까지 내놓았다. 경제문제에 대해 전혀 둔감하던 사람들조차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는게 아닌가』며 걱정이 태산이다. 정부도 이례적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시장참가자들에게 제발 시장교란행위를 자제해달라고 애걸복걸까지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동남아에서 불어온 외풍에 경제기반까지 흔들거릴 정도로 허약한 체질이 되어버린 근본 원인이 기아사태의 장기화때문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보 이후 연이은 대기업 부도로 혼란에 빠졌던 금융시장은 지난 6월부터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아가는 조짐을 보이다가 기아사태로 다시 휘청거렸다.
이때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조기에 진화했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시장경제원리라는 공염불만 되뇌이면서 뒷짐지고 있는 사이 금융시장의 근본인 신용질서는 무너져 버렸고 한국의 경제기적을 시샘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외국인들은 이제 한국을 외면하기 시작하고 있다. 경제당국의 권위는 이미 사라져버렸고 경제주체들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감기조차 몸이 쇠약해진 사람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1백일간의 기아사태로 기진맥진해 있는 우리 경제에 동남아 외환위기와 홍콩 독감은 상상 외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금융시장의 동맥경화, 자그마한 충격에도 휘청거리는 증시와 외환시장, 경제주체간의 신뢰실종 등을 불러온 기아사태 장기화라는 내우가 외환에 대처할 힘을 송두리째 앗아간 상황이다.
국가경제는 절대로 실험대상일 수 없다. 경제 정책의 최고책임자를 아무나 뽑아서는 안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