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와 북한 그림자/폴 A 새뮤얼슨(송현칼럼)

전쟁위험, 인종분규 및 계급투쟁이 없는 사회의 경제는 번영한다. 반대로 분쟁지역은 경제가 멍든다. 유고와 북아일랜드가 좋은 예다.중국의 경우 군벌들의 대결이 격화됐을때 중국인들의 기업가적 재능은 발휘되지못했다. 대부분의 열대지방 국가들은 생활수준과 생산성이 낮다. 그러나 기후를 탓하기 전에 이들 국가들의 역사가 종족분쟁 및 갈등으로 얼룩져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민족분규가 경제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단일민족국가인 한국은 매우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했다. 레닌의 공산혁명이 성공하기전 전제군주체제의 러시아는 계급갈등이 심화됐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후진을 면치못했고 개발이 더디었다. 모택동이 과격학생들에게 교수들을 처단케한 문화혁명으로 중국경제는 뒷걸음질쳤다. 내가 이같은 진부한 얘기를 하는 것은 한반도의 긴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남북간의 대결은 그 자체로 유감스런 일이다. 전쟁은 정말 비참한 것이다.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 북한 독재집단의 계획경제가 한국의 시장경제를 앞설 가망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냉전종식후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경제지원을 거의 받을 수 없게 됐다. 경제적으로 쿠바처럼 북한은 무기력상태에 빠졌다. 기아상태가 닥쳐온 것이다. 생산성 및 실질소득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은 여전히 강력하다.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인은 한반도의 평화 및 번영지속 가능성을 가늠해보아야 한다. 6·25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전쟁재발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독일의 통일은 남북한 관계의 미래에 어떤 시사점을 던지는가. 물론 독일과 한국의 경우는 같지 않다. 동서독의 통일은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와는 다른 문제와 도전에 직면케 했다. 카스트로의 쿠바가 경제난에 못이겨 시장경제로 돌아올 것인가는 북한이 경제실패로 일당독재를 포기할 것인가와 다른 질문이다. 나는 공산주의가 시장경제와의 싸움에서 패배할때 국민들이 공산주의를 폐기처분할 것이란 희망은 잘못된 것이라고 경고하고 싶다. 동유럽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고르바초프가 동독 괴뢰정권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포기했을때 동독경제는 위기상태는 아니었다. 한국의 경제적 번영을 잘 모르고 있는 북한인들과는 달리 서방의 풍요로운 생활상을 잘 알고 있는 동독인들은 고르바초프가 자유롭게 가라는 신호를 보내자 마자 대량 탈출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철권통치를 하는 북한의 붕괴가 이같은 전철을 밟을 것같지는 않다. 히틀러는 독일인들을 파멸의 전쟁으로 내몰았다. 소련군이 베를린에 진입한 최후의 순간까지 히틀러는 독일인들에게 고통과 사망을 강요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비밀경찰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다. 나는 비틀거리고 있는 독재정권에 대한 과거의 경험을 통해 한국이 북한을 신중하게 다루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신중하다는 것은 겁이 많거나 나약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 양측 혹은 일방이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 1914년 여름 1차세계대전으로 치닫기까지 하루하루의 역사적 사건들이 이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침략으로부터 지키는 맹방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사실은 중요한 것이다. 1950년과 비교할때 미국은 현재 해외에 군사력을 전진배치해 놓고 있다. 현재 세계총생산중 미국의 비중은 당시의 절반 수준이다. 월남전의 아픈 상처로 미국내에서는 고립주의성향이 강하다. 레이건시대 이후 재정적자 확대로 정부지출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달러화는 과대평가되어 먀샬플랜을 시행할 때와 비교, 미국의 힘은 제한되어 있다. 이는 미국의 맹방인 한국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사한다. 어려울 경우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라. 그러나 한국의 무리한 야망이 모두 실현되도록 해주는 무소불위의 강자가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동맹관계는 관련국의 상호이해와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성공할 수 있다.<미 MIT대 교수·노벨경제학상 수상>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