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선물 시장에서 동반 상승세를 보이던 `검은 황금'과 `진짜 황금'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수급불안 우려로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던 국제유가가 지난주 들어 뚜렷한 하락세로 돌아선데 비해 금은 기록적인 가격 상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9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은 전날에 비해 배럴당 1.72달러(3.5%) 내린 47.37달러에 마감됐다.
이는 지난 9월21일 이후 7주만에 가장 낮은 종가다.
이로써 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55.6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10월25일에 비하면 보름만에 무려 15%나 하락했다.
아직도 1년전과 비교하면 54%나 오른수준이기는 하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많은 시장 분석가들이 배럴당 60달러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전망을 내놓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국제유가는 매우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다.
석유시장 분석가들은 국제유가의 하락을 공급과 수요 양면에서 풀이하고 있다.
우선 공급면에서 미국 멕시코만 일대의 허리케인 피해가 복구되면서 원유 생산과 수입이 거의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고 이에따라 미국의 원유 재고량이 꾸준히 늘어나고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0일 발표되는 지난주 유류재고량 통계에서는 원유재고가 한주간 200만배럴 늘어난 2억8천97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요 면에서는 무엇보다 큰 우려사항이었던 북반구, 특히 난방유 소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미국 동북부 지방의 올 겨울 날씨가 온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격안정에 크게 기여하고 잇다는 평가다.
이에따라 특히 그동안 가격 진동폭이 컸던 난방유 선물 역시 이날 NYMEX에서 지난 9월21일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꾸준히 증산을 계속하고 있고 수에즈 운하의 선박 운항 중단사태는 단기간에 해소됐으며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지역에서 별다른 악재가 없다는 점도 유가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석유시장 분석가들은 갑작스러운 혹한의 엄습이나 대형 테러 발생 등 돌발 변수만 없다면 국제유가는 당분간 하향안정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분석가들이 이와 같은 전망을 자신있게 내놓는 데는 그동안 유가 급등의 배후로지목돼 왔던 헤지 펀드들이 석유시장에서 손을 털고 나가는 조짐이 완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선물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주 헤지펀드들은 국제석유시장에서 원유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매입하는 롱 포지션 비율을 75%나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유가가 이처럼 맥을 못추는 사이 금값은 계속 상한가를 치고 있다.
9일 NYMEX 산하 상품거래소(COMEX)에서 12월 인도분 금 가격은 전날에 비해 온스당 2.80달러(0.7%) 오른 436.20달러를 기록해 1988년 이후 16년만에 최고치로 올라섰다.
이로써 금값은 지난 6개월 사이에만 15%나 상승했다.
금값이 오른 것은 물론 미국 달러화의 약세가 결정적인 원인이 됐지만 국제유가의 하락과도 무관하지 않다는분석도 있다.
그동안 석유시장에서 짭짤한 수익을 올린 헤지펀드들이 온난한 겨울기후 등으로 인해 더이상 유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금을 포함한 다른상품으로 눈을 돌렸다는 설명이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석유시장에서 빠져나온 헤지펀드들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 뻔한 달러 약세 속에서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금매입에 나서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