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타툴리(Multatuli). 소설가 에두아르드 데커(Eduard Dekker)의 필명이다. 대표작은 1860년 발표한 자전적 소설인 ‘막스 하벨라르’.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지 수탈에 고민하는 가상의 관료 막스 하벨라르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 소설은 19세기 유럽 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정신분석학을 개척한 프로이트는 ‘10권의 책을 추천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주저 없이 이 책을 첫번째로 올렸다.
1820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선장이었던 부친을 따라 18세에 인도네시아로 이주했던 데커의 직업은 식민지 관료. 말단으로 시작해 부통감까지 오른 그는 36세 때 전임자의 비리를 고발했는데 오히려 정직을 당하자 사표를 던지고 귀국, 한 호텔에 머물며 소설을 써내려갔다.
내용은 식민지 학정 폭로. 강제노동에 동원돼 당국의 지시대로 특정 작물만 파종했다가 수확이 나쁘면 굶어죽어야 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의 고통과 문명국가라고 믿었던 조국 네덜란드의 착취, 토착지주들과 유착해 부패를 저지르는 현지 관리들의 부패를 낱낱이 고발한 소설 ‘막스 하벨라르’가 나오자 유럽은 충격과 논쟁에 휩싸였다.
불온주의자로 찍혀 직업을 얻지 못한 데커는 각국을 방랑하며 집필과 연설로 생계를 꾸리다 1887년 2월19일 67세로 가난하게 죽었지만 ‘해적국가의 양심’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늘날의 ‘막스 하벨라르’는 희망의 상징이다. 제3세계의 생산물을 제값주고 수입하자는 공정무역을 시작한 국제단체도 막스 하벨라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공정무역은 ‘희망무역’으로도 불린다.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공정무역에 있다는 뜻에서다. 물타툴리는 라틴어로 ‘수많은 고통’ ‘시련을 견디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지구촌 경제가 되살아나려면 얼마나 많은 물타툴리를 치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