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사실상 “좌초”/3당 종합과세유보 합의 의미

◎“경제회복 상당기간 소요” 판단/검은돈에 「면죄부」로 투자 유도/정부대응 미지근 결국 백기 든셈문민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일컬어지던 금융실명제와 금융소득종합과세가 국제통화기금(IMF)신탁통치를 부른 경제난에 휩쓸려 사실상 좌초되게 됐다. IMF 신탁통치를 자초한 김영삼 대통령의 실정과 리더십 상실이 겹쳐 정부는 사실상 백기를 들고 문민정부 개혁의 간판이나 다름없던 실명제를 포기한 결과다. 이날 3당이 논의한 내용은 일단 제한적이다. 자금출처 조사가 면제되는 무기명 채권의 규모를 3조원 수준으로 제한하고 종합과세도 1∼3년간 유보하는 수준이다. 또 한나라당과 국민회의는 실무자간의 합의일 뿐 아직 당 차원의 합의는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으나 대선을 의식한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날 논의의 실제적인 내용은 실명제와 종합과세의 사실상 폐지나 다름없다. 종합과세를 유보할 경우 실명제는 껍데기만 남는다. 정부는 실명제 실시의 목적이 검은 돈의 흐름을 차단하고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닦아 형평과세를 달성키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경제난 해소를 위해 종합과세를 유보한다는 정치권의 논리와 현재의 경제위기가 한두해만에 극복될 성질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상당기간 유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단 유보된 뒤에 다시 시행하기 어렵다는 점은 지난 5년내내 실명제 및 종합과세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돼 왔던 점을 고려할 때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10억달러상당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하면서 자금출처 조사를 면제한데 이어 다시 3조원규모의 자금출처조사 무기명채권을 발행한다는 것은 이들 자금에 대해 과거와 미래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검은 돈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은 고사하고 상속·증여세를 탈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개혁후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종합과세의 일단 유보와 무기명채권의 제한적 허용이라는 우회로를 택했지만 사실상 실명제와 종합과세의 대폭적인 후퇴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국민회의의 고위당국자들은 완전합의된 내용도 아니고 실무자선의 논의일 뿐 정책위의장에게 보고되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다. 하지만 IMF 협정위배 여부까지 꼬치꼬치 파악한 점을 보면 이미 논의는 상당수준이상 진척이 된 상태이며 다만 대선국면에 미칠 정치적 파장을 의식한 발빼기로 분석된다. 특히 일부정당의 경우 이같은 합의내용을 은근히 흘리며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의 대응도 예상밖으로 미지근하다. 재경원 고위당국자는 이날 3당의 움직임에 대해 『논의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고 밝혔다. 실명제유보 논란이 나올 때마다 당국자들은 『그동안 실명제 및 종합과세실시에 따른 비용은 다 지불했다』면서 『금융실명제의 후퇴나 종합과세 유보는 있을 수 없다』고 언성을 높이던 지금까지의 태도에 비춰 뭔가 달라진 모습이다. 이미 실무자선에서는 IMF와 협의를 통해 실명제의 근본적인 수정은 아니라는 답변까지 얻어낸 것으로 전해진다. IMF와의 협상과정에서 실명제 골격유지를 삽입한 것으로 전해질 정도로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업적인 실명제와 종합과세를 지키고자 했으나 결국 마지막 남은 치적마저 물거품이 됐다. 각 정당 관계자들은 『아직 미합의 쟁점이 많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여론을 의식해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경제난국 극복과 경제정의 실천이라는 두가지 명분 가운데 국민 여론이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실명제와 종합과세의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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