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경제전문가와의 대화] 골드스타인 IIE선임연구원
입력 2002.08.05 00:00:00
수정
2002.08.05 00:00:00
"한국, 정부보유 은행지분 매각 서둘러야""브라질은 부채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고는 위기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한국 경제는 탄력성이 있기 때문에 브라질 경제가 파산하더라도 그 피해가 최소화될 것입니다."
워싱턴 소재 국제경제연구소(IIE)의 모리스 골드스타인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경제위기를 겪은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빨리 회복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시중은행의 지분을 매각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일본 경제는 금융부실이 해결되지 않는 한 재앙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머징 마켓 위기를 집중 연구한 그와 인터뷰했다.
- 미국 경제가 하반기에는 둔화된다고 경제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기둔화가 한국에 미칠 영향을 말해주십시오.
▲ 우선 미국 경제 둔화는 아시아 국가의 수출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미국 경기둔화에 잘 견딜 것으로 봅니다.
한국 경제는 수출 뿐 아니라 광범위한 분야에서 회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경기가 둔화되더라도 한국은 상대적으로 잘 버틸 것으로 생각합니다.
- 브라질 경제가 위기로 치닫고 있습니다. 현지통화인 헤알화와 국채가 급락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경제가 파산할 것으로 봅니까.
▲ 브라질 경제는 몇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금리 상승 압박이 강해지면서 국채와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결과가 불투명한 탓도 있지만 경제 기초여건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에 4.5%였던 성장률이 올해 1.5%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엄청난 대외부채를 지고 있고 2003년과 2004년에 각각 450억~500억 달러를 상환해야 합니다. 수출이 증가하지 않고, 올해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가 2000년보다 줄었습니다.
지난 99년 이래로 공공부채도 누적되면서 콜금리를 비롯, 금리 상승에 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부채구조조정을 해야 할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브라질이 위기를 피하려면 내년에 고도 성장을 하고, 지금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 있는 금리를 내리고, 빡빡한 재정긴축정책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브라질은 부채비율이 높기 때문에 부채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부채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브라질은 내년 말, 즉 앞으로 18개월 내에 부채구조정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가능한 일임에도,현재로선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브라질은 대외부채와 국내부채가 함께 몰려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채(TB)에 대한 브라질 국채 가산금리가 연초에 8%였으나, 지금은 20%까지 치솟았습니다.
- 브라질은 지난 99년에 헤알화를 절하했는데도 수출이 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브라질의 수출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11%밖에 되지 않습니다. 브라질은 한국처럼 수출 지향적 국가가 아니고, 전통적으로 생활필수품을 수입해왔기 때문에 통화가치 절하에도 불구하고 수출을 늘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 해외투자자들이 브라질 야당의 룰라 다 실바 대통령 후보를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는 시장 친화적이지 않고, 공기업 민영화를 지연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또 정부 지출을 늘리고, 국영은행을 통해 대출을 확대할 것으로 해외투자자들은 걱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현재 중앙은행 총재인 아르미니오 프라가를 교체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상실되는 것이 우려됩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통화정책을 운영해야 하는데, 정치성이 개입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 브라질 경제가 파산한다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입니까.
▲ 브라질 위기의 파장은 라틴아메리카에 한정될 것입니다.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페루, 콜롬비아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고, 부채가 많은 터키나 러시아도 영향권에 들 것입니다.
한국은 경제가 강력하게 회복되고 수출 중심의 국가이기 때문에 거의 영향이 없을 것으로 봅니다.
- 연초에 모라토리엄(대외지급유예) 선언을 한 아르헨티나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아르헨티나의 문제는 은행의 문제입니다. 은행에 돈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예금주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행의 부채를 채권으로 전환, 예금자에게 매각해야 하는데, 정부가 인기 없는 정책을 기피하는 바람에 문제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할 일이 많습니다. 페소화를 절하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목표를 정해야 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인정하며, 지방 정부가 남발하는 채권 발행을 중지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을 얻을 것입니다.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현정부가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을 밀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 아르헨티나는 마이너스 15%의 성장을 기록하는 최악의 해가 될 것입니다.
- 일본 정부가 최근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회복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 경제가 금융부실을 해결하지 않고 '진정한 의미'의 회복을 할 수 있다고 봅니까.
▲ 없습니다. 일본 경제는 아직 바닥을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본 정부의 말을 믿질 않습니다. 일본 경제는 아직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엔화가 단기적으로 상승하고, 수출이 증가했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일본은 아직 은행의 악성 대출을 해결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디플레이션 문제가 겹쳐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에 가장 큰 문제는 공공부채가 총량이나 순증액 규모에서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을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공공부채가 총액으로 GDP의 200%, 순규모로 GDP의 100%에 이를 경우 자금조달에 위기가 발생합니다. 이를 채무 위기(debt crisis)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자율이 급등하게 됩니다.
- 일본의 이자율은 제로금리에 가깝지 않습니까.
▲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일본 국채를 사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잘못이라고 비난하는데, 정말 문제는 일본 경제 자체에 있습니다.
일본은 은행과 부실 기업을 계속 구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있는데, 공공부채는 영원히 증가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엔 한계에 이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재앙을 맞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일시적으로 경제활동이 좋아져 한숨을 쉬고 있을지언정, 장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 경제는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아직 일본은 이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 역사적으로 고정환율제도는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홍콩이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두 나라의 환율제도도 무너질 수 밖에 없을까요.
▲ 중국은 아직 자본시장이 취약하기 때문에 고정환율제가 아직은 흔들릴 우려는 없습니다.
중국은 국영 은행의 악성 채권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궁극적으로 환율체계에 변동성을 조금씩 도입해야 할 것입니다. 연금제도에도 부실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또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선택하기 위해 결국엔 환율 제도에 탄력을 부여할 것으로 봅니다.
홍콩도 정치적 불안을 최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고정환율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홍콩도 보다 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고정환율제가 유리할 것입니다. 홍콩은 아직 고정환율제를 포기할 의사가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정환율제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한국은 5년 전에 외환위기를 겪었고, 그동안 구조 개혁을 단행, 빠른 시일내에 경제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한국은 위기를 겪었던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많은 일을 했다고 봅니다. 경제도 회복시켰고, 개혁도 단행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더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기업 개혁 부문에서는 자만에 빠진 것 같습니다. 부채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졌지만, 부채 규모 그 자체는 줄지 않았습니다.
또 한국 기업은 수익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경영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기업 수익은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수익을 높이는 일에 노력해야 합니다.
금융 부문에서도 많은 진전이 이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은행 지분을 소유, 은행을 국유화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훌륭한 은행가가 될 수 없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국영은행이 민영은행보다 잘 운영되는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은행을 민영화해야 합니다.
정부가 높은 값을 받기 위해 은행 지분을 오래 소유하는 잘못된 일입니다. 오래 끌수록 상황은 악화됩니다.
또 노동 분야에서 유연성을 확보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아직 더 고쳐야 할 것이 남아있습니다.
한국은 이머징 마켓 가운데서 가장 모범적으로 경제개혁을 단행한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더 할 일이 남아있고,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한다면 경제는 강력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최근 저서에서 'IMF와 미 재무부가 이머징 마켓의 경제위기를 심화시켰다'고 비판했는데, 동의합니까.
▲ 스티글리츠 교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위기에 처한 국가가 금리를 내릴 수 있는데, IMF가 금리를 인상하라고 잘못된 논리를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브라질을 보십시오. 프라가 중앙은행 총재가 IMF 권고대로 금리를 올려 경제를 진정시킨 다음에 금리를 내릴 수 있지 않았습니까.
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을 보면, IMF가 요구한 금융개혁을 단행하지 않았더라면 경제 회복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IMF의 견해가 대체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뉴욕=김인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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