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3월 30일] 생색내기용 다자녀 주택정책

과유불급(過猶不及). 최근 한나라당이 지방 선거를 앞두고 내놓은 저출산 7대 공약 가운데 주택 관련 대책을 보면 자연스레 이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한나라당은 이번 공약에서 3자녀 이상 가구의 주택 당첨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민영주택 특별공급 비율을 10%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현재 민영주택에서 3자녀 이상 가구에게 특별 공급되는 물량은 3%. 언뜻 보면 적은 비율일 수 있지만 막상 수요는 그리 많지 않다. 서울 및 수도권 인기 신규 주택의 경우 분양가가 너무 비싸 청약이 쉽지 않은 탓이다. 최근 강남권 한 재건축 단지에서 분양된 3자녀 특별공급은 4가구 공급에 5가구만 청약해 간신히 모집 정원을 채웠다. 지방의 경우 특별공급 비율을 늘리는 것은 아예 의미가 없다. 미분양이 넘쳐 청약통장 자체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 결코 집이 없어서 자녀를 안 낳는 것은 아닐 게다. 자녀가 많은 서민 가정에 정말 필요한 것은 싸고 입지가 좋은 주택이다. 현재 정부는 이들을 위해 보금자리주택에서 10%의 물량을 배정하고 있다. 연 8만가구인 수도권 보금자리주택 규모로 볼 때 공급 비율은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다자녀 가구가 들어가 살기 힘든 소형 주택 물량이 너무 많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전용 85㎡ 이하(국민주택)의 다양한 주택형에 일괄적으로 10%씩 물량이 배정되는 탓이다. 가장 규모가 큰 전용 85㎡는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달하지만 전용 60㎡ 이하에는 신청자가 적어 미달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다자녀 가구에만 전용 60㎡ 초과 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각한 저출산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단순한 주거 수준 개선을 넘어 '희망'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여러 식구가 모여 살 만한 집을 싸게 구할 방법이 있다면 출산의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집을 싸게 공급할 테니 전용 60㎡ 이하 주택에 5~6식구가 들어가 살라는 것은 다자녀가구 입장에서 보면 생색내기로만 비춰질 수도 있다. 당정은 수요도 없는 곳에 공급만 늘리겠다는 선거용 공약을 내놓기보다는 현재의 보금자리주택 정책을 좀 더 맞춤형으로 다듬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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