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공사가 한창이던 충남의 B사 아파트 건설현장.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아파트 현장의 출입구는 굳게 닫혔다. 공사장에 세워졌던 타워크레인도 철수하고 현장을 드나들던 공사차량과 인부들도 사라졌다. 저조한 계약률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회사 측이 아예 기존 계약자들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주고 사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극심한 신규 분양 침체와 유동성 위기가 건설업계의 일손을 놓게 하고 있는 단면이다. 신규 분양을 연기하는 것은 물론 부도 등의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아예 진행 중인 사업마저 취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저조한 계약률 때문에 공사를 끌고 갈수록 자금 부담만 늘 수밖에 없다”며 “아예 현장에서 철수하는 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에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멈춰선 타워크레인=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파트 공사 중단은 B사만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업체들이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을 뿐 지방 아파트의 경우 청약률 ‘0’인 현장들은 사실상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착공계만 제출해놓고 공사를 하지 않는 곳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지방 중견 주택업체인 C사의 한 관계자는 “아파트 청약 결과 신청자가 한명도 없는 상태가 몇 개월째 계속되고 있다”며 “공사를 하면 할수록 자금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데 뭣하러 공사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가 전국 대부분 지역을 투기 및 투기과열지구에서 푼 10ㆍ21대책 이후 공급한 아파트 가운데 순위 내에서 입주자를 채운 단지는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지방에서는 7개 단지가 단 한명의 청약자도 없는 청약률 ‘0’을 기록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0월과 11월 두달간 전국에서 청약을 받은 아파트는 245개 단지, 3만8,024가구다. 지난해 12월 단 한달간 공급물량이 215개 단지, 6만1,183가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월 공급물량이 거의 4분의1 토막 난 셈이다. 특히 10~11월 두달간 공급물량 중 순수 민간 공급물량은 2만800가구 남짓해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나머지 절반은 사실상 주택공사나 지자체 등 공공 부문에 의존한 것이다.
◇사활 건 대규모 개발사업도 표류=경기도 광명역세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자인 태영컨소시엄은 최근 시행자인 주택공사와 사업규모 축소를 협의하고 있다. 당초 이 사업은 오는 2011년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입해 대규모 복합시설을 건립하는 것으로 컨소시엄 측은 시장상황을 감안하면 당초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규모 PF사업은 건설업체들에 침체된 아파트 사업의 새로운 돌파구로 여겨졌지만 유동성 위기가 심화된 현재 상태에서는 오히려 암초가 되고 있다. 건설경기 악화로 PF 부실이 확대되면서 해당 건설업체에 엄청난 유동성 압박을 가져오고 있다. 실제로 한 증권사 내부보고서에 따르면 비교적 단순 부채비율이 낮아 재무건전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대형 건설사조차 상당수가 PF지급보증비율을 감안한 부채비율이 600%를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A사의 한 관계자는 “기존 PF조차 경영에 압박을 주는 상황에서 신규 PF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업체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금융권 역시 이미 PF를 중단한 상태여서 사실상 대규모 PF사업은 올스톱됐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