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98년, 동아시아ㆍ러시아ㆍ라틴아메리카등 신흥자본시장이 통화위기에 허우적거릴 때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저승사자’라는 악명을 떨쳤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패닉이 생겼다. 그들의 잣대(신용평가)에 따라 특정 국가나 기업, 금융기관이 파산 또는 경영위기의 나락에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무디스와 S&P의 신용도가 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이는 신용평가사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을 계기로 위험성이 높아진 확대된 파생상품의 평가를 올바르게 하지 않았다는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4일(현지시간)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채권 파생상품 신용평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신용평가사들이 서브프라임 부실을 확대하는데 기름을 부었다고 보도했다. 두 신용평가사들은 지난달 미 재무부 채권(TB)에 견줄만한 신용도를 갖춘 회사들의 채권 파생상품에 ‘트리플A (Aaa)’ 등급을 부여했는데, 투자자들이 평가하는 실제 신용도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문제가 된 상품은 ‘고정비율의무지급 증권’(CPDO : Constant Proportion Debt Obligation)으로, 이는 여러 채권으로 바스킷을 구성, 디폴트(지급불능) 확률에 승률을 걸고 일정 프리미엄을 주는 채권이다. 미국 채권시장이 흔들리면서 CPDO의 현재 가치가 크게 하락하자, 월가 투자자들은 이 채권에 높은 평가를 부여했던 신용평가사들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다. 바스 크라그텐 ING인베스트먼트의 자산유동화증권(ABS) 담당 트레이더는 “신용평가사들의 평가등급이 파생상품들에 대한 신뢰도를 반영해주지 못했다”면서 “내일이면 ‘Aaa’ 등급에서 추락할 CPDO가 독일국채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평했다. CPDO는 지난해 중반 네덜란드계 은행인 ABN암로가 처음 개발해 내놓은 채권 파생상품으로, 지금까지 리먼브라더스와 HSBC 등을 통해 최소 40억달러어치 이상 판매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검증되지 않은 이 상품에 신용평가사들이 ‘Aaa’라는 높은 등급을 매겨 투자자들이 많은 투자를 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무디스사의 경우 지난 한해 CPDO 등 각종 구조화채권들에 대한 신용평가 수수료로 회사 전체 매출의 43%인 8억8,000만달러라는 거액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신용평가회사들은 CPDO에 높은 등급을 매긴 이유가 바스킷에 들어 있는 채권 대부분이 우량채이고, 주기적으로 디폴트된 채권은 제거된다는 점 등을 꼽고 있다. 뉴욕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액면가 1달러짜리 CPDO의 현재 가치가 달러당 70센트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헤지펀드처럼 상당한 돈을 차입해 덩치를 키우고 일반 채권처럼 100% 원금 보장이 없는 파생상품은 당연히 높은 수익 가능성만큼 리스크가 높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